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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04. 2024

디자인은 호주 여행이다

메이페이퍼 ㅣ 호주 디자인은 _____ 이다. ㅣ 02

내 앨범 속에 한 장의 사진. 바닷가에서 울고 있는 두 살의 내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것이 나의 첫 여행이라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사진을 보며 나에게 설명해 줬던 그 여행을 나는 ‘내가 기억한다’라고 착각을 한다. 그리곤, 내 머릿속에 상상으로 만들어낸 여러 장면의 이미지로 저장하고 있다. 바다의 모래가 까칠 거려 울고 있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발바닥에 모래가 여전히 붙어있는 듯 불편했던 첫 여행이었다.


두렵고

무섭고

이상하고

뜨겁고

엄마는 웃고 있고.


포토샵이란 프로그램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아니 사람들이 포토샵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는 그때가 1997년의 여름방학이었다. 그 당시 회화과였기에 컴퓨터를 사용할 일도 없으면서 호기심에 시작한 배움이었다. 지금 이렇게 컴퓨터 세상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면서도, 왠지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은 필수처럼 느껴졌었다. 그렇게 매킨토시, 지금의 iMac, 이라는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클릭하면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신기했던 첫 경험이었다.


신나고

놀랍고

설레고  

기대되고

나는 웃고 있고


내 인생의 첫 여행도, 내 디자인의 첫 경험도 도전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아기에게, 새로운 컴퓨터 디자인이라는 것을 접하는 대학생에게는 그 첫 도전이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 후의 여행들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어렸을 적이라도, 여행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선명하다. 물론, 여행일정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여행을 하며 그때의 감정을 품고 있는 나를 확실히 기억한다.


부모님은 여행을 참 좋아하셨다. 덕분에 어렸을 적엔 국내여행을,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을 때부터는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다. 그리고 내가 유난히 여행을 좋아했나 보다, 할머니가 여행을 가신다 하면 부모님 없이도 할머니를 여러 번 따라나섰다. 할머니와 단 둘이서 캐나다 여행. 할머니와 사촌동생과 일본여행. (중학생 손녀와 여행을 하셨던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일찍 하늘로 가신 할머니를 만나 여쭤보고 싶다.)


신랑도 여행을 좋아했기에, 결혼 후에도 우리 가족은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2016년에 한달살기로 호주를 방문한 이후, 3년이 지난 후, 2019년에 호주로 아예 이민까지 오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억 속의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여행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기억 속의 여행들을 소중하게 추억하면서 살고, 다음의 여행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사는 듯하다.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호주 디자인대학원에서 과제로 받게 되는 모든 디자인 프로젝트는 신기하게도 또다시 여행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디자인은 여행으로 다가왔다. 물론 설레고, 기대되고, 도전이고…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실제로 디자인을 하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진짜 호주여행과 같았다.


호주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나는 호주의 여러 곳을 간접적으로 여행해야 했다. 내가 간접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코비드 시절, 락다운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호주의 국경이 닫혀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던 그때, 유일한 낙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를 하면서 나 혼자 즐기던 온라인 여행이었다. 여기로 정할까? 이런 곳도 있네? 여기 날씨는 이렇구나. 하루종일 구글맵 지도를 스크린에 띄어놓고,  프로젝트를 위해서 호주를 먼저 알아야 했다.


지역, 지형, 사람, 문화, 기후, 예술, ….  


그렇게 집에서 즐겼던 호주여행지역은,

일단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힐부터

시드니의 관광명소, 오페라 하우스

음식 축제가 열리는 메림불러(Merimbula)

그라피티의 도시, 멜버른 그리고 시드니의 뉴타운

원주민의 마을, 베스윅(Beswick)

퀸즐랜드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Great Barrier Reef)


코비드 시절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 과제를 핑계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을 결석시키고 진짜 여행을 했을 것이다. 원주민 마을도 직접 방문했을 것이고,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러 몇 시간을 달려 그곳에 가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러 갔을 것이다.  


현장방문을 하지 않고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일단 내 기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대학원 과제라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아쉬운 건, 여전히 아쉬운 건, 그라피티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디자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라피티와 관련된 디자인 과제를 제출하고 난 뒤, 락다운이 끝나고 방문했던 실제 그라피티의 동네, 뉴타운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좀 더 생동감 있는 디자인을 할 기회를 놓친 듯했다. 내가 했던 디자인이 왠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디자인이 짙은 네이비의 배경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같았다.





어찌 되었든, 아쉬운 온라인 여행이었지만, 그것도 여행이었기에, 실제로 ‘여행’이라는 컨셉은 계속해서 내 디자인 속으로 들어왔다.  


동네여행

도서관여행

비행기여행

바닷가여행

문화여행

축제여행

봉사여행
캠페인여행

해외여행

교육여행


그 여행들은 도전이었고, 호주스러움이었고, 어울림이었고, 배려였다.

그 디자인들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새로운 호주스러움이었고, 새로운 어울림이었고, 새로운 배려였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여행을 통해 호주,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


프루스트(주1)


프루스트의 말처럼, 내가 2년 동안 호주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프로젝트는 참된 여행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심이 될,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살필 수 있는 시선을 만들어줬고, 나는 이 여행을 또 소중하게 추억하고, 앞으로의 또 다른 디자인 여행을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NEW TOWN / Copyright 2023.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주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쉘 푸르스트, 믿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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