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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11. 2024

디자인은 어둠 속 미로게임이다.

메이페이퍼 ㅣ 호주 디자인은 _____ 이다 ㅣ 03

"난 네가 이번 과제를 잘못 이해한 줄 알았어."


꼴깍. 침을 삼켜야 했다.

가장 떨리는 시간.

담당교수의 코멘트를 받는 시간이다.


가장 깐깐하고,

가장 팩트만을 말하는 교수의 입에서

“잘했다. 잘하고 있네. 맞게 가고 있어 (On the right track) ”

그 말을 듣기 위해 난 매주, 매일 노력했다.


그런데. 잘못 이해했다고?


"근데, 마지막 사진을 보고. 와~ 이건 진짜 멋진 작품이었어."


나에겐 극찬이었다. 휴~




이 디자인수업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복잡한 것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3D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 다른 3D 오브젝트를 만들어 보고, 그것에 다시 영감을 받아 2D 디자인을 하고 / 반대로 2D 디자인을 다른 2D 디자인으로 표현해 보고, 그것에서 다시 영감을 받아 3D의 오브젝트를 디자인하는 수업이었다.


사실, 그 교수말대로, 나는 이 수업의 과제들을 매주 제출하고 코멘트를 받을 때까지 내가 맞게 가고 있나? 항상 의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목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랬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아마 그럴걸?”

“그런 것 같아.”

“근데 잘 모르겠어"

“에이 모르겠다.”

“다음 수업에서 물어보자"


아예 영어로 설명된 것을 이해 못 한 이들도 있었고,

영어는 이해했지만, 과제를 이해 못 한 경우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영어와 과제 모두는 이해했지만,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는지

혹은 자신이 맞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품었었다.


나는 세 번째에 해당된다. 대학원의 첫 번째 수업이었던 이 수업을.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는 것 자체도 벅차긴 했지만, 난 그보다 과제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 복잡했다.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닫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튜터가 매주 우리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대해 왜 코멘트를 달아주는지 이해가 됐었다.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그런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건 진짜 복잡한 미로 같았다. 그것도 어둠 속에서 치러지는 미로게임.


우리는 어둠 속의 미로 앞에 서있었다. 출발선부터 수백 개, 수천 개의 길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일단, 그 목표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

목표는 각자 만들어 스스로 어둠 속으로 던져 놓고,

그 목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출발했다.


나는 그 수많은 길 속에서 내가 갈 길을 찾아야 하고,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하고,

내가 간 길은 나만의 길로서 보이게끔

나의 빛으로 내 길을 밝게 비춰놔야 하고,

목표점까지 어떤 길을 선택해도 상관없지만

도착은 해야 했다.






모두 5주 만에 끝내야 했다. 리서치, 분석, 여러 번 그리고 다양한 실험의 디자인 과정, 실제 제품 제작, 3분 동안의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모든 제작 과정을 담은 최종 PDF 포트폴리오 제작까지.


3D–3D–2D / 2D–2D–3D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은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 머릿속이 투디, 쓰리디, 쓰리디, 투디…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러 왔는데, 내가 가장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3D 디자인이라니.


일단 3D 사진부터 찍으러 나갔다. 나는 유학생으로서 가장 나에게 인상이 깊었던 건물/3D를 골랐다.


첫 번째는, 기차




두 번째는, 퀸 빅토리아 빌딩



세 번째는, 당연히 나에겐, 오페라 하우스


이 사진들 속에서 디자인 요소들을 찾아, 선, 도형, 색상,... 등등을 분석하여 첫 번째 주 과제를 제출했다.


돌아온 피드백은 칭찬이었다. "베리머치 온 트랙.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난 2주 차 수업이 끝난 후, 내가 고른 건물이 이번 과제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무수리를 던졌다.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결정! 튜터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미 난 그 건물들에 흥미를 잃었기에 다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 고른 건물이 우리 동네 기차역.


찍은 사진을 튜터에게 다시 보내어 진행여부를 확인받았고, 그에게서 돌아온 이메일 속, 마지막에 적혀 있던 한 문장.


“밤에 이곳에 가보면 또 어떻게 달라 보일까? 난 그게 궁금하네"


가볍게 던진 한 마디가 나를 또 자극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 12시. 신랑과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빛이다!!!


어둠과 빛.

어둠 속에 모든 것은 가려졌고,

조명이 비치는 곳만 내 눈앞에 보이고,

화려했던 색상도 사라지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기차역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빛 하나만으로 사물이 달리 보였다.


그리고,

밤시간의 기차역은 고요했다.

사람들이 없는 이곳.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없고,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없다.

적막했다.


어둠과 잘 어울리는 고요함이 기차역에도 존재했다.

이러한 적막함을 품은 기차역의 고요함을

나의 디자인에 담을 수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도전이었다.  


디자인에 2D, 3D뿐만이 아니라, 빛과 분위기를 함께 담아야 했다.

이것이 내가 찾아야 할 이번 수업의 최종 목표였다.

나의 목표가 스스로 빛을 발화하기 시작했다.






...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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