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l Experiences _ 01
예술 중,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나는 여러 가지 미술 관련 전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때는, 대학입시를 위한 전공과목을 정하기 전에, 3개월씩 여러 가지 전공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 서양화, 동양화, 디자인, 조소, 이렇게 크게 4개의 전공이었다. 각각의 전공을 3개월 동안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을 다뤄보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것을 1년 동안 배워봤던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삶에 들어와 있다. 자수를 배웠을 때는, 다양한 자수종류들을 모두 배우고자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고, 한국에 없는 일본 자수책들은 해외배송으로 구입해서, 기초밖에 모르는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기도 했다.
하나만 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뿐이라는 개념보다는, 전체를 봐야 각각의 특징을 알 수 있었고, 각각의 쓰임새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나라별 자수의 특징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었고, 자수의 역사에도 깊은 관심이 생긴 것도 이런 폭넓은 경험 때문이었다.
동화를 접하면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접한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글, 그림, 아이, 자연, 교육, 철학, 상상, 현실, 기타 등등등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동화를 좋아한 것이다. 글과 그림을 즐겼고, 아이를 키우며 그들과 책을 읽는 시간을 즐겼고, 아이들이 힘겨워할 때 나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그들을 교육했고, 이러한 모든 과정을 지나오면서 나는 아이들의 자아를 찾아줬고, 덕분에 나도 덩달아 삶의 지혜를 동화에서 배웠고, 아직도 현재 동화를 통해 나의 자아도 찾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며칠 전, 온라인 세상과 현실 세상과의 괴리감이 생기면서, 현실 속 나에 대한 커다란 공허함을 느낀적이 있다. 거기서 이어지는 허탈함, 외로움까지.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깨닫고 있다. 특히 내가 표현할 동화을 위해 더 많은, 그리고 훨씬 다채로운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어로 쓰인 동화'를 위한 일러스트를 그리며 나는 자주 난관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휘리릭 읽힌 글들이었는데, 그림으로 그리려 하니, 동화 속 한 문장 하나에 며칠을 끙끙댄 적이 있다. 동화 속 단어는 모든 이들이 알만큼 쉬운 것이고, 해석도 되고, 어떤 의미인지도 마음으로 이해까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일러스트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동화 속 장면 하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 문장의 의미가 한순간에 파악이 되고, 글을 쓴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고, 나만의 스토리 텔링이 생기면서 하나의 이미지가 확실하게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나의 그림에 대한 자심감도 생겼었다.
그 후로도, 이와 같은 경험들을 여러 번 하고 있다. 이는 동화가 한글로 적힌 것이었다면 나는 이미 단어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한국사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지금보다는 쉽게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로 표현된 글들은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가 주는 뉘앙스도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나 스스로 그것을 파악하려고, 나는 지금 한 문장 한 문장을 진심을 다해 깊이 들여다보는 중이다.
동시에, 매일매일 나에게 찾아오는 경험들에서 동화와 매치되는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순간들에 나 스스로 의미를 좀 더 부여하고 그것들을 잘 캐취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은 가슴 아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슬픈 경험이라, 빨리 잊고 싶은 일인데도, 나는 그 감정을 동화 속에 담으려고 몇 시간을 그 기억과 힘겹게 싸워야 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나에게 전달된 5개의 동화 속 한 장면, 한 문장, 한 단어와 나의 삶이 완벽하게 일치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렇게 동화와 현실이 이어지고, 다시 나는 나의 현실을 동화 속에 넣는 중이다. 그렇게 내가 경험하는 만큼, 나의 일러스트는 현실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그러니 매일매일 내가 경험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해지고, 의미 있어지는 중이다.
요 며칠 독서모임에서 들었던 릴케의 시에 대한 문장이 나의 삶과 연결되어 더 깊이 이해가 되는 것도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릴케가 로댕에게 배운 제작 방법은, 하나의 생명을 보는 조건을 구비하기 위하여 끈기 있게 내면적으로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 무겁게 닫혀 있는 사물의 압력에 견디고 경건하게 그 내부에 들어가는 것이다. 릴케 시의 비밀은 모두 이렇듯 인내와 봉사와 헌신이 가져온, 다시 말해서 요설과는 정반대의 침묵 속에서 보는 방법을 터득한 데 있었다.(주)"
그리고 깨달은 것은, 나의 현실 모두를 동화 속으로 넣어놓으니, 내가 나의 현실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 나의 현실 자체가 동화가 되면서 내가 느끼는 현실세계와 동화 속 세계의 구분이 자연스레 사라지니, 괴리감이 아닌 연결로 인한 결과이지 않을까? 그리고, 또 다른 경험으로 채워지라고 나의 현실의 한 부분이 계속 비워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어진 생각은, "매일 나에게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자." 리얼 현실세계에서.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경험을 더 폭넓게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두 개의 아트 클래스를 등록했다. 이미 다 할 줄 아는, 어쩌면 전문가 수준일 수도 있는, 드로잉과 채색과정을 나는 호주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우려 한다. 이는 한국에서 배운 과정과는 전혀 다를 것이니, 이는 나에게는 또 다른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또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나 스스로를 영어권 세상에 내놓은 도전이기도 하다. 영어를 이해해야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는 이 상황에서 내가 내놓은 최선의 해결책이다. 참 멀리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경험은 또 어떻게 나의 미래와 연결될지 알 수 없으니, 그저 현재를 소중히 경험하는 중이다.
경험을 해야 내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경험을 통해 나를 찾고, 나의 가치를 찾는 중이다.
Emotional Experiences
6개월 전, 아빠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고 수강했던 수채화 아트 클래스. 그때는 침묵속에 그림만 그렸었는데, 이제는 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려한다. 그들의 삶속에는 또 어떠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들어보고 싶다.
(주)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05,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