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채팅 앱에 설정해 둔 프로필 사진을 모두 지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어느 순간 더 이상 나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잘 나왔다'라고 생각하며 사용하던 사진이었지만, 이제 그 사진이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내 사진 대신, 다른 이미지나 아이들의 사진을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허전함이 컸다. 내가 나를 세상으로부터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짝 불안도 찾아왔다. 프로필 사진은 내가 세상에 내비치는 작은 창문 같은 존재였는데, 그 창문을 닫아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창문이 닫히고 나니, 이상하게도 내 안에 감춰져 있던 다른 창문들이 하나둘씩 열리는 듯했다. 외부를 향한 창문을 닫았을 때,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가 찾아왔다.
며칠이 지나자 내 안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무엇도 더하지 않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떳떳함과 자유로움. 마치 더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듯한 해방감이었다. 나는 나 자체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모습을 외부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은 내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듯했다.
"무(無)"—그것은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떳떳함일까?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부귀와 명예를 내려놓고 셔츠 바람으로 세상에 나서는 그 감각.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로 세상과 마주하는 경험. 그런 감각이 지금 나에게서 찾아왔다.
며칠간 사진 없는 프로필로 살아가면서, 나는 그 빈 공간 속에서 나 자신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지 않고도 내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는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내 사진 속의 모습이 있어야만 지금의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살아가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내 프로필을 보고 나의 마음적 변화에 대해 추측하거나 그들만의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프로필 사진을 지운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글로 적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작은 행동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내면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내가 발견한 깨달음들은 반드시 오늘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도 세상에 설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도 나라는 존재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프로필 속의 빈 공간을 바라보며, 그 공간이 주는 쉼표 같은 편안함을 즐기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사진 없는 프로필 그 이상이다. 그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한 달 전쯤, 내 일기장에 "나는 나를 야생으로 보낸다"라는 문장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나를 스스로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야생에 나를 던져놓았을 때, 그것이 주는 불안감 대신, 오히려 더 큰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정해진 틀 없이,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본질과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주 나는,
야생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나를 더 자세히 바라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