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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낸다 _ 외부의 자극을 없앴다

by 근아

여자의 직감,

INFJ의 직관력,

예술가의 초민감 직관력까지.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자극에 그대로 노출된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들이 회오리를 담은 강물처럼 내 안으로 밀려들어와 나를 휘저었다. 때로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가 다시금 주저앉히기도 하며, 하루 종일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러한 감정들이 모두 외부의 자극에서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잠시 나 자신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일주일간, 나에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화나 채팅을 최대한 자제했고, 새벽 독서 모임, 아트 클래스 외에는 그 어떤 외부 활동도 하지 않았다. 나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개인 활동들도 자연스럽게 횟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이미 1년째 유튜브나 다른 소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줄이는 데는 특별한 금단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내게 일어나는 변화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어떤 의지로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ㅡㅡ

외부 자극을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여전히 나를 통해 지나갔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두려움은 두려움대로. 내가 평소 느끼지 못했던 아주 작은 감정들까지 내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한참 동안 내 반응을 기다리다 결국 지루해진 듯이 나를 떠나갔다. 기쁨이 지나간 자리는 슬픔이 차지했고, 슬픔이 자리를 비우면 두려움이 그 자리를 채웠다. 마치 내 안에 감정을 담아두는 주머니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감정들이 지나가는 것을 천천히 느끼며, 그들이 왜 나에게 왔는지 생각해 보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었다.


감정들은 여전히 찾아왔다가 떠났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지나가는 손님들일뿐이었다. 슬픔은 무겁게 머물다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졌고, 기쁨은 찰나에 반짝였으며, 두려움은 가볍게 다가왔다가 금세 떠났다. 나는 그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밀어내지 않으며, 그저 그들이 지나가도록 허락했다.


나는 그동안 외부 자극에 이끌려 살아온 나의 일상을 돌아보았다. 외부 세계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마치 나의 내부로 흘러들어와 나를 조종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극이 차단되자, 내 안에서 생성되는 무언가가 더 강력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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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자극을 없애니 시간은 무한히 늘어난 것 같았고, 속도는 극도로 느려진 듯했다. 호주에 온 지 6년이 되어가는데,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호주의 '느림'에서 여유로움을 찾았고, 그 여유 속에서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호주의 봄을 맞이한 자연의 속도보다 내 삶이 더 느리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완전히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이 새로운 리듬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깊은 시간을 경험했다. 외부의 시계는 멈춘 듯 보였고, 나의 내면은 반대로 더 깊이, 더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 느꼈던 그 낯선 여유로움이 이제는 내 삶의 리듬이 되어 있었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다가, 이제는 나 자신만의 속도로 더 느리고 깊게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외부의 소음이 사라지고 나니, 오롯이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공간 속에서 나는 예술적 작업에 몰입했다. 새벽 4시에 쓰는 글쓰기와 오전에 그리는 일러스트 작업은 나에게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시간이 멈춘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무한히 늘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때는 단순히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흐름을 작품에 담아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진정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더욱 명확해졌다.




이처럼, 삶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깊이에서 오히려 삶의 무한한 가능성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간의 실험이 끝나고, 외부의 자극이 다시 찾아오면서 나를 다시 뒤흔들려는 소음과 감정들이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나를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다. 그만큼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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