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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속에서 채워지는 나

큐브 안, 내 정신의 힘은?

by 근아


오늘은 이 글쓰기 공간을,

그저 비워두고 싶었다.

빈 공간으로 채워놓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하얀 도화지.

지금의 내 마음이 딱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씩 허락되면서,

나는 하루종일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목감기가 찾아와 말하기도 어렵기에,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그 고요함은

자연스럽게 비움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침묵으로 이어졌다.


그 비움 속에서,

그 침묵 속에서

한때 소란스럽고 분주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욕심이 가득했고, 의욕에 넘쳐 있었고,

무엇이든 꽉 채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보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쏟아내며,

그렇게 달려왔던 내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 비움 속으로,

그 침묵 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내 안에서 나의 목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큐브의 빈 공간을 채우는 나의 목소리다.





사람들이 메아리를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이상하기만 하다. 메아리는 우리 목소리를 비춰주는 거의 유일한 소리다. (중략) 그날 가장 나의 기억에 남은 사건은 내가 들은 그 메아리였다. (중략) 전부 내가 전에 여러 번 듣고 생각한 것들의 단순한 반복이거나 가장 나쁜 의미의 메아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메아리만은 새로웠다. 그것은 내 목소리의 반복이지만 소리를 두 배로 늘려 놓은 이상의 어떤 것이 담겨 있었다. 말을 한 나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생각들을 떠올리게 하는 한결 심오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더불어 말하고 싶은 상대였다. 이런 좋은 후훤자와 더불어 나 자신과 대화하고 나 자신을 반성해 볼 수 있었다. - 소로의 일기





(주) 소로의 일기, 핸리 데이비드 소로, 갈라파고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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