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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나는 여전히 태양처럼

큐브 안, 나의 정신의 힘은?

by 근아

3일째 열이 내리지 않고 있다.

온몸이 뜨겁고,

눈코입이 마치 타오르는 듯하다.

내가 태양이 된 듯한 기분이다.


감기 3일 차,

정확히 말하면 호주에서의 목감기 3일 차다. 호주에 온 지 6년이 되어가지만, 이곳의 감기는 여전히 나를 압도한다. 슬쩍 지나가줬으면 좋겠지만, 이곳의 감기는 항상 나의 에너지를 끝까지 짜내고 나서야 사라진다. 나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이 땅의 감기는 매번 다른 형태로 나타나 나를 찾아오기에, 당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당혹스럽다. 평소에는 무심했던 내 면역력을 원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픈 몸으로 지쳐있는 순간에도, 내 안에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깨달음이 있다는 사실이 참 근아스럽다. 아픔 속에서도 나의 생각은 멈추지 않고, 어딘가로 계속 흐른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순간, 마치 차가운 물이 내 위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뜨겁게 타오르던 에너지의 불길이 그 찬물에 치이익 소리를 내며 꺼져가는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그저 한순간의 피로가 아닌, 내가 지금껏 붙잡고 있던 사명감, 나를 이끌던 불꽃조차 꺼져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듯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내가 태우던 에너지가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것을 실감하면서, 그 공허함 속에서 나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듯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그동안 그렇게 뜨겁게,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구나.


내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 속에서, 그리고 내 삶 속에서 태양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래전에 그려놓은 두 개의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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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내가 처음 철학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어느 날 밤, 깊은 사색 속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그려낸 그림이었다. 그 속에는 한 아이가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그 아이는 결국 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별은 온 세상을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때 그 아이는 나였다. 그 빛을 향해 걷는 나의 모습이었고, 그 별은 결국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전체 스토리: [다시 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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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그림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동화 속 캐릭터를 바탕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 그림 속 주인공은 작은 네모난 불빛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조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불빛은 점차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그 불빛은 더 큰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그 작은 네모난 불빛이 결국 세상을 밝혀줄 중요한 상징이 되어, 나의 이야기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었다.




나의 빛이 별빛이든, 태양빛이든,

한순간 꺼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 빛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음을 이제는 알듯하다.


그 빛은 여전히 나를 통해 세상에 비추고 있다.





그대의 눈길을 안쪽으로 돌려라. 그러면 그대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 개의 지역을 보게 될 것이다.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고
마음속 우주지리학의 전문가가 되어라.
- 윌리엄 헤빙턴 (주)









내 몸안의 이 열감기의 뜨거움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그냥 내가 태양이다.

그리 생각하련다.

- 2024년 9월 어느날






(주) 데이비드 핸리 소로가 쓴 <월든>에 인용된 윌리엄 해빙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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