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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넘어, 나를 만나다

큐브 안, 내 정신의 힘은?

by 근아

[지난 글들에서 이어집니다. ]


트라우마.


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심리적 상처라 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때로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나에겐 20년 동안 반복해서 꾸는 악몽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 겪었던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혜롭게 사용하고자 노력 중이다.


첫 번째 단계는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또 때로는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과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직면은 필수적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내 트라우마를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 듯하다.


두 번째 단계는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종종 내 잘못이나 실수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거나 변명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한 행동이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냈다고 생각할 때, 나는 종종 왜 상대방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 불만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이나 행동에만 주목하면서, 그 상황에서 나의 역할이나 책임을 간과했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문제의 시작이 종종 나에게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거나 어떤 말을 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렇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잘못한 경우도 있다. 그들의 강한 리액션으로 인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감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들여다보고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 순간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세 번째 단계는 깊이 고민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그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나 자신의 행동을 재해석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과 성찰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안겨주며, 이를 통해 나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트라우마는 나에게 단순한 고통이나 상처가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교정함으로써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 중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히 나의 첫 번째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다니엘과의 영어 수업 시간에,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다니엘과 함께 그 상황을 재해석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그 과거의 공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로 나는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상황이 생기면, 다니엘과 함께 했던 과정을 나 스스로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나에게 남아 있던 다른 4가지 트라우마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모두 치유할 수 있었다.


이제 더이상 악몽은 꾸지 않는다. 20년전의 그 상황을 상상하고 그때의 감정을 일부러 느끼려해도 나에게 스쳐지나가는 것은 전혀 없다. 신기할 정도다.


나는 이제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사라진 후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즐거운 일로 여기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고통은 인간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가장 강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원천이고, 우리는 고통을 겪지 않고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주 1)"고 말한 것처럼, 이러한 경험들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처럼, 큐브 안에 담긴 불안한 과거의 경험들은 하나둘씩 직접 마주하며 치유하고, 나의 내면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면의 강인함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 과거를 단순한 기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가 갈수록 내가 점점 분석하는 과학자가 되어가는 것만 같아 두렵다. 창공을 보는 드넓은 관점을 희생한 대가로 들판을 세밀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전체와 전체의 그림자가 아닌 세부사항을 본다. 부분들을 헤아려 보고 '알았다'라고 말한다. - 소로(주 2)






(주 1)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주 2) 소로의 일기, 데이비드 헨리 소로, 갈라파고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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