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안, 내 정신의 힘은?
호주 시드니에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다.
겨울 내내 우중충했던 앞마당에 꽃들이 알록달록 제 색깔을 내느라 분주하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는 꽃들이 있다. 분명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꽃들인데, 마당의 한 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 기억에 오류가 생긴 걸까? 아니면 이 꽃들이 작년에는 없었던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봄햇살을 집 안으로 들이고자 거실의 모든 블라인드를 올리고 잠시 뒷마당을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바쁜 일상에 치여 뒷마당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도 주황색과 핫핑크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런데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뒷마당에도 내가 작년에 보지 못한 꽃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눈에 띄는 나무를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이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안방 침대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을 보냈던 날들이었다. 밖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는커녕, 그저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작년 9월의 봄을 내 삶에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봄은 나에게서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 기억마저도 놓쳐버렸다.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났지만, 인생은 여전히 나를 시험한다. 인생의 절반쯤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지금, 나에게 닥친 사건은 마치 블랙스완과도 같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다가와 나를 흔든다. 설상가상으로 지독한 감기에 걸려 어제는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갇혀 있자니,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평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지금의 기분을 적기로 했다. 내 큐브에도 부정적인 감정과 시련이 담겨야 진실된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 글에 솔직한 마음을 담기로 했다. 오늘의 우울한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시작된 하루가 어느덧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고 있다. 앞마당과 뒷마당의 꽃들이 작년과 다르게 보였듯이, 내 삶도 이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마도 그 꽃들은 작년에도 거기 있었겠지만, 내 마음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그 시절의 나는 고통에 빠져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그 고통을 지나왔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이제 나는 그 꽃들을 볼 수 있고, 그들과 함께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오늘 이렇게 글 하나를 발행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작년과는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성장했다. 봄이 다시 찾아오고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듯이, 내 삶도 새로운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 색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만의 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지난봄을 놓쳤다면, 이번 봄에는 그 모든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늘 이런 순간들로 채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하는 고통과 시련은 마치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의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그런 과정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내 인생은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으니, 나는 그저 오늘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