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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Nov 03. 2024

10.자연 속에 담긴 엄마의 유산


작업일지 (에필로그)


내 손끝에 닿은 '연필'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러나 이 작은 도구가 품고 있는 시간은 깊고도 길다. 한번은 바람 속에서 잎을 흔들던 나무였을 것이고, 어느 비 내리는 날엔 잎사귀마다 떨어진 빗방울을 머금은 생명이었을 것이다. 수백, 수천 겹의 나이테를 거쳐 나무는 사람의 손을 거쳐 연필이 되었고, 이 작은 도구가 되어 내 손에 들려 있다. 내게 연필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손끝에서 나오는 모든 선과 형태에 이 나무의 생명이 담겨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수제종이'라는 또 다른 자연의 일부 위에 놓이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은 하나의 연결이 되어 의미를 가진다. 


수제종이도 마찬가지다. 그것 또한 바람과 햇살 속에서 살아온 나무였고, 지금은 종이로 다시 태어나 나와 아이 사이에 놓여 있다. 연필과 종이의 만남은 마치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은밀한 대화와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마음을 전하듯, 종이와 연필이 만나면 그 위에 새겨지는 모든 것이 하나의 유산처럼 깊이 스며든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며 아이를 떠올렸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림에 담아낸 이야기가 무색해진다 해도, 내가 전하려 했던 마음은 그림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마치 엄마가 나무를 손수 다듬어 자식에게 소중한 물건을 만들어주듯,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그것이 한 점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이 그림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속에서 엄마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연필과 수제종이 자연의 일부였던 것처럼, 내 아이와의 관계 역시 대지와 하늘이 잇는 생명의 순환과 닮아 있다. 종이에 새겨진 연필의 흔적은 비록 한 순간에 머물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작은 유산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비와 바람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진한 선으로, 아이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








오늘로 [그림 그리는 북디자이너 with 지담] 브런치북을 마무리합니다. 



북디자인에 나의 시그널을 담다 - theME 그나

지담 작가님의 <엄마의 유산> 책을 위한 일러스트와 북디자인을 작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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