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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를 데려간 곳, 영국

2025년 영국여행 EP.02

by 근아

이번 영국 여행의 즉흥적인 시작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잠시 들렀던 서점에서 시작된다.


그날의 기록은 다음 글에 자세히 적혀 있다. (먼저 읽어보시길...)

꿈은 이루어진다 - 영국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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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뒷이야기를 조금 더 적어보려 한다.


내가 8월 30일에 구입했던 그 동화책은,

영국에서는 9월 11일에 출간되는 신작이었다.


그저 내 마음에 들어서 집어 든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영국 현지보다 무려 2주나 먼저 출간된 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2주의 시간차’는 우연 이상의 것이었다. 만약 그 책을 영국과 같은 날, 그 책을 접했다면, 아마 나는 여행을 떠날 결심을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정보다 이르게 책을 만난 덕분에, 나에겐 뜻밖의 여유와 준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은 나로 하여금 ‘망설임’을 ‘결심’으로 바꾸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내 삶의 방향을 살짝 틀어놓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오래전부터 조용히 울리고 있던 “언젠가 다시 가야지”라는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한 권 구입한 데서 끝나지 않았다.
책을 구입한 그날 이후, 내 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꿈’이 하나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영국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겨난 것이다.


책을 구입한 뒤, 나는 북디자인과 편집 방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종이 질감, 타이포그래피, 여백의 구성, 그리고 일러스트와 글의 리듬까지. 디자이너이자 작가로서의 시선으로 그 책을 들여다보는 순간, 이 책이 그저 ‘읽을거리’로만이 아니라, 나에게는 하나의 ‘배움의 대상’이자 ‘미래의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대학교 이름이 있었다.
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이 책의 작가 Michael Rosen이 바로 그 대학의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흥미로웠던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이 둘을 함께 가르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한 문장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7년 후에 지원하면 되겠다.”


다른 일러스트 학과보다 더 높은 영어 점수를 요구한다는 사실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단련시켜 줄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어는 억지로 쌓는 지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스며드는 사고방식이자 세계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그 언어는 언젠가 나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 흘러온 호주에서의 7년의 시간처럼.


돌이켜보면, 그 믿음은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시간에 대한 신뢰’였다. 사람의 성장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뿌리가 천천히 땅속을 파고들며 자리를 잡아가듯, 느리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과정이다.


7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서서히 뿌리내리게 한 보이지 않는 계절이었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번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그해 나는 영국으로 떠나기로 자연스럽게 마음먹었다. 그것은 충동적인 결심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스며든 듯 생겨난 하나의 방향이었다. 거창한 계획이나 단단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시간이 알려준 대답’에 가까웠다.


그렇게 이번 영국 여행은
다가올 시간의 한 장면을 미리 살아보는 듯한, 7일간의 ‘영국에서 살아보기’를 위한 여행이 되었다.
무작정 떠나려 했던 여행이, 어느새 분명한 목적과 새로운 꿈을 품은 여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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