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국여행 EP.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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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이끈 길이라 해도, 현실은 나를 쉽게 영국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남은 2주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집중해서 마무리하던 어느 날, 나는 뜻밖의 문제와 마주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조여왔다. 우리집 지하에 있는 세탁실에 한 번만 오갔을 뿐인데, 가슴 통증이 올라왔다. 몇분이 지나도 숨참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가끔씩 나타났던 증상이었지만, 그때는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일주일 후에 영국으로 떠난다면, 여행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 눈앞에 그려졌다. 다행히 증상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미리 예약해 두었던 병원 진료일이 출국 5일 전으로 잡혀 있었다.
출국 5일 전,
진료를 받자, 의사는 피검사 그리고 심장과 폐 엑스레이 검사를 권했다. 내가 5일 후에 영국으로 출국한다고 하자, 의사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제 오셨어요…”
응급하게 엑스레이 촬영을 당일로 마치고, 결과는 수요일—출국 3일 전—에 받기로 했다.
출국 3일 전,
병원을 다시 찾았다. 다행히 심장과 폐에는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철분 수치였다. 정상 수치가 120 이상이어야 하지만, 내 수치는 80. 예전에도 철분 부족으로 운동 중에 기절할 뻔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그때보다 두 배는 심각한 상태였다.
의사는 잠시 검사 결과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행… 꼭 가셔야 하나요? 혹시 취소하면 안되죠?”
순간, 마음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출국을 눈앞에 둔 나에게 그 질문은 마치 ‘현실’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처럼 느껴졌다.
의사는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이 상태로는 영국에 가는 건 위험합니다. 철분 주사를 맞고 가시죠.”
하지만 이미 병원 예약은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영국에서 돌아온 후 치료를 받기로 하고, 진료에 대한 수납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는 직접 담당 의사를 찾아가 내 상황을 설명하고 치료 시간을 특별히 마련해 주었다.
“내일 아침, 바로 주사 맞으러 올 수 있어요?”
호주에서 7년 동안 살아오면서, 병원 예약이 이렇게 하루 만에 잡힌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짧은 거리를 걸을 때마다 숨이 가빠오던 지난날이 스치며, 깨달음이 밀려왔다.
‘이 여행은 나의 꿈이자 동시에, 무모함이 될 수도 있었구나.’
호주에서 철분 주사를 맞으려면, 환자가 직접 약국에 가서 주사용 철분액을 구매해 와야 했다. 약국에 들르자, 약사는 철분 주사 3통을 꺼내 들고는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이 약… 정말 비싸요. 세 통에 800불 (80만 원)이에요. 그래도 구입하시겠어요?”
한국에서는 2~3만 원이면 해결됐던 치료였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80만 원이라니. 순간, 멈칫했다. 가격의 문제를 넘어, 내가 이 여행에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순간이었다.
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네, 필요해요. 주세요.”
출국 2일 전,
아들을 평소보다 일찍 깨워 등교 준비를 마친 뒤, 나는 이른 아침 병원으로 향했다. 매일 빠짐없이 참석하던 새벽 독서 모임에도 미리 양해를 구해두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직 진료가 시작되기 전이라, 대기실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담당의사는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걱정스러운 듯 길게 설명했다. 닝겔 주사 후 30분 동안 약을 맞고, 이어 30분간은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 의사가 우려하던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쪽 귀 뒤에 약간의 열감과 가려움이 느껴진 정도였다. 의사는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을 하나 처방해 주었다.
즉각적으로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을 나와 걸음을 옮기자 숨이 차오르던 정도가 눈에 띄게 줄었고,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의사가 건네준 부작용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으며, ‘아무 증상이 없으니 운이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혹시 몰라 오후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푹 쉬기로 했다. 다행히 컨디션이 예상보다 좋아, 저녁 일정은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내일은 가방을 차분히 챙길 여유가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출국 1일 전,
여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철분 주사를 맞은 날엔 별다른 이상이 없어 안심했지만, 24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두통약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 내가 너무 잘 보관해 두었는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텨보려 했지만,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졌다. 집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이 서러움처럼 밀려왔다.
약을 사러 나갈 기운조차 없었기에, 우버 배달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슈퍼마켓에서는 진통제만을 덩그러니 주문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과일 몇 개와 음료수를 함께 담아 대충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30분이라는, 짧지만 끝없이 느껴지는 시간을 끙끙 신음하며 버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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