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온 컵

몇 년 전, 나는 완전히 번아웃되어 매일 회사를 그만둘 생각 밖에 없었고 온갖 지랄을 다 떨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 바르셀로나에서 머물 수가 있었다. 퇴사 후 바르셀로나로 훌쩍 날아가버리다니! 언뜻 보면 아주 멋지고 근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순간 부터 다시 회사원이 될 때 까지 1년 동안 내내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 불안해했고, 바르셀로나 생활 다음에 어떤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질릴만큼 여행도 많이 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회사원의 굴레는 벗어던지지 못한 채 1년을 보냈다. 

나는 늘 이렇게 걱정이 많고 불안하다. 멀쩡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요즘도 늘 불안해한다. 나는 잘 하고 있는걸까, 이 일이 과연 맞는 길일까, 과연 나는 몇 살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이 회사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 한다. 눈 앞에 놓인 일이나 잘하자라고 생각하지만 먼 일 걱정에 사로 잡혀 매일 우울해한다. 

요즘 다시 바르셀로나에 가기로 결정했던 그 때를 생각한다. 또 다시 회사를 그만 두고 멀리멀리 도망 가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다시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다면 난 딱 하루씩만 살 것이다. 오늘은 뭘 먹을지, 오늘 하루는 뭘 하고 지낼지만 생각하겠다. 통장 잔고도 잊고 , 다음에 뭐가 될지도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딱 하루씩만 살면 좋겠지만 왠지 그런 다짐은 바르셀로나여야만 더 잘 지켜질 것만 같다. 아아 도망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