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던 아침이었다. 창밖으론 늦가을의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커피메이커에서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블루마운틴의 향이 주방을 채우고 있었다. 시계는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경찰서에서였다. 박미선이라는 여자가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5년 전 실종된 두 소녀를 자신이 죽였다고.
박미선의 자백은 이른 아침에 이루어졌다. 당직 형사의 보고에 따르면, 그녀는 새벽 6시 정각에 경찰서 정문에 나타났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아침이었다. 그녀는 우산도 들지 않은 채 차분한 얼굴로 안내데스크를 찾았다.
“5년 전에 실종된 두 소녀 사건, 제가 했습니다."
접수 담당자는 처음에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미선은 침착하게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었다. 박미선, 39세. 실종된 소녀 중 한 명인 지은이의 어머니였다.
나는 전화를 받은 채로 잠시 침묵했다. 창밖의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고, 주방의 커피 향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경찰이 된 지 15년, 가장 존경하는 선배의 딸이자, 나의 대녀인 세희를 잃은지 5년. 그 시간들이 마치 커피 잔 속의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강형사님."
당직 반장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건 선배님이 직접 들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메이커가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혹은 오래된 등대의 깜빡임처럼.
세희가 사라졌을 때도 이런 비가 내렸었다. 15살의 소녀가 겨울비에 젖은 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범인이라고 여자는 5년 만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욕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43살의 형사, 그리고 이제는 살인 사건의 담당자. 거울 속의 남자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지난 5년간의 시간이 깊은 주름으로 새겨져 있었다.
7시 30분, 나는 집을 나섰다. 차가운 빗방울이 내 뺨을 때렸다. 마을의 끝자락에 서 있는 오래된 등대가 희미하게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등대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박미선은 취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백한 형광등 아래 앉아있는 그녀는 5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짧고 푸석한 파마머리, 수더분한 회색 코트, 그리고 순박한 얼굴. 살인자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떠올릴 수 없는 외모였다.
"앉으시죠, 강형사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 만남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녹음기가 놓여있었다. 빨간 불빛이 깜빡이며 시간을 새기고 있었다.
"왜 5년이나 기다리셨죠?"
내가 물었다.
박미선은 잠시 테이블 위의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톱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검지 손톱 끝이 살짝 깨져있는 것이 보였다.
"제가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강형사님은 아직도 등대를 보면 그날 밤을 떠올리시나요?"
그 순간, 나는 이 사건이 단순한 자백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창밖으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멀리 안개 속에서 마을의 등대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제야 진짜 수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박미선은 그날 저녁 7시 정각에 딸 지은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창밖으로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고, 거실에서는 뉴스 끝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은아, 저녁 먹자."
대답이 없었다.
미선은 다시 한 번 노크를 했다. 15년간의 육아 경험이 알려주는 직감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평소의 지은이라면 이미 두 번째 부름 전에 대답했을 것이다.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책상 위의 스탠드만이 희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침대는 비어있었고, 지은이가 늘 끼고 다니던 보라색 헤드폰이 베개 위에 놓여있었다.
시계는 7시 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선은 침착하게 방 안을 살폈다. 책상 위에는 수학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다. 마지막 문제의 답이 중간에서 끊겨있었다. 지은이의 필기구는 여전히 답안지 위에 놓여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문제를 풀던 중에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휴대폰을 집어 지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미선은 방 안의 시계 소리를 들었다. 똑딱, 똑딱. 통화연결음이 세 번째로 바뀌는 순간, 방구석에서 지은이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7시 5분. 미선은 세희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은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세희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세희도 방금 나갔다고 하던데요."
세희의 아버지인 이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닌가요?"
미선의 등줄기로 차가운 것이 흘러내렸다.
7시 10분, 미선은 아파트 경비실로 향했다. CCTV를 확인해야 했다.
"네, 기억납니다." 경비원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지은 학생이 6시 45분경에 나갔어요. 세희 학생이랑 같이요."
화면 속에서 두 소녀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아파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은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교복 차림이었다. 그리고 세희는... 미선은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세희의 손에는 분명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등대."
경비원이 말했다.
“두 학생이 등대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어요."
7시 15분, 미선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등대로 향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5년에 걸친 악몽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5년 후 살인자로 자수하게 될 거라는 것도.
마을 끝자락의 등대는 늘 그랬듯이 어둠 속에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 빛은 어쩐지 평소와 달리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고 미선은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