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이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15년차 강력반 형사로 일하면서, 강태식은 수없이 많은 끔찍한 것들을 봐왔다. 욕조에 버려진 신생아의 시체도, 전기톱으로 토막 난 시신도, 뜨거운 설탕물에 녹아내린 얼굴도 있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강태식은 강력반에서 제일 비위가 좋은 이가 아니였나. 하지만 이건... 이건 달랐다.
박미선의 집에 들어섰을 때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려웠다. 마치 완벽하게 조율된 피아노에서 단 하나의 음이 미세하게 어긋난 것처럼, 아주 작은 무언가가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지나친 깨끗함.
거실의 마루바닥은 마치 방금 공장에서 생산된 듯한 광택을 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바닥에 비칠 때마다 나는 눈을 찌푸려야만 했다. 식탁 위에는 파란색 도자기 화병이 놓여있었는데, 그 안에는 물 한 방울 없이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주방 싱크대는 수술실처럼 살균된 느낌이었다. 스테인리스 표면에는 지문 하나 없었고, 수도꼭지는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광을 낸 듯했다. 식기건조대에는 접시가 크기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각각의 간격은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했다.
욕실의 타일은 하얗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마치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순백이었다. 거울은 너무나 깨끗해서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이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레몬 향 소독제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그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냄새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지우려 했지만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은 기억처럼.
침실의 침대는 군대식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이불의 주름 하나 없는 표면은 마치 누군가가 자로 잰 듯 완벽한 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베개는 마치 전시용 모형처럼 보였고, 그 위에는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았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옷들은 색상별로 완벽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각각의 옷걸이 사이의 간격은 정확히 2센티미터였을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는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증거도, 살았었다는 흔적도 없었다. 그저 완벽한 청결함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완벽함이야말로 가장 큰 이상신호였다. 인간은 결코 이토록 완벽할 수 없으니까.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생각이 다시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불길한 생각이 스쳤고 심장이 작게 쿵쾅거렸다. 두 소녀가 사라진 실종사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사건에 모든 경찰들의 신경이 쏠려있었던 것은…., 조성환의 딸 조세희가 실종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실종 사건은, 모든 경찰들이 결코 겪고싶지 않은 악몽을 전시해놓은 사건과 같았다.
"선배님 루미놀 준비됐습니다."
잔뜩 긴장한듯한 신참의 목소리에 사념이 끊어졌다.
박미선은 몰랐을거다. 피는 시간이 지나도 절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불 꺼주세요."
스위치가 내려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숨을 멈췄다.
(하나님 이런 씨발…)
처음에는 그저 희미한 점들이었다. 마치 별들처럼. 하지만 자외선이 벽을 타고 올라가자... 주여..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벽은 살아있었다. 아니, 차라리 죽어있었다고 해야 할까. 형광빛으로 빛나는 핏자국들이 마치 지옥의 벽화처럼 펼쳐졌다. 깨끗해 보이는 벽지 위로 끔찍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도저히 5년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옆에 있던 신참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단순한 살인 현장이 아니었다. 이건 광기였다. 순수한 악意 그 자체였다. 게다가…., 아니다. 떠올리지 말아야한다.
주방으로 가는 복도에는 끌린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아니, 뭔가가 질질 끌려간 자국. 피는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사방에 튀어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림이 아니었다. 15살 소녀의 피였다. 그것도 경찰서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한 경찰관의 외동딸.
핏자국이 끝난 방문 앞에 섰을 때, 나는 문득 경기도 외곽의 펜션에서 있었던 그 끔찍한 사건이 떠올랐다. 한 남자가 이혼한 전처와 아이를 만나러 갔다가... 아니,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방문이 열렸다.
"세상에..."
우리가 본 것은 지옥이었다. 분홍색 커튼과 아이돌 포스터로 꾸며진 10대 소녀의 방은 이제 악몽의 미술관이 되어있었다. 자외선 아래에서 벽은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피가... 피가 천장에서 비처럼 내렸었다.
그때 신참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저.. 저기… 저기 좀 보세요…“
천장을 보니 글씨가 있었다.
형광빛으로 빛나는 악마의 메시지
[우리는 모두 등대로 가야해]
창밖 멀리, 마을의 등대가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강태식은 마치 쏟아져내리는 머리를 받치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곳에서 목격한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는 것을.
박미선은 살인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전혀.
취조실의 차가운 조명 아래에서조차 그녀는 믿음 좋은 권사님처럼 보였다. 부스스하지만 단정하게 빗어 넘긴 파마 머리, 어딘가 촌스럽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원피스. 그리고 목에 걸린 작은 십자가 목걸이까지. 완벽했다. 너무나 완벽했다.
이런 여자가 살인자라니.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녹차로 할게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봄날의 미풍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매니큐어 하나 칠하지 않은 깨끗한 손톱. 반지도 없었다. 하지만 중지 손가락 옆면에는 작은 굳은살이 있었다. 성경책을 넘기다 생긴 자국일 테다.
"매주 수요예배와 주일예배에 참석하시죠?"
"네." 그녀가 미소지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시니까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맑고 깨끗했다. 마치 산속의 고요한 호수 같았다. 하지만 모든 호수에는 밑바닥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깊은 곳에 무언가가 숨어있기도 한다.
"성가대 봉사도 하시고요."
"네, 20년째 알토파트를 맡고 있어요. 강형사님은 요즘 교회에 나오지 않으시던데..”
그때였다. 그녀의 입가에 스친 미소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보았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 흐릿한 그림자처럼, 뭔가 다른 것이 스쳐 지나가는 걸.
(*자외선 조명이 필요해. 그래, 당신의 영혼에 비출 자외선 조명이 있다면...*)
"신은 우리를 용서하시죠." 그녀가 말했다.
“네, 모든 것을 용서하시죠." 내가 영혼없이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완벽함이 바로 가장 큰 결함이라는 것을.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그 자체로 기괴해진 그림 같다는 것을.
창 밖으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4시. 우리 동네 장로교회의 종은 늘 5분 느리게 울린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종소리가 마치 장례식의 조종처럼 들렸다.
"박미선씨." 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루미놀이라는 게 뭔지 아세요?"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잠깐. 호수 위로 잔물결이 인 것처럼.
"아뇨." 그녀가 대답했다.
너무나 완벽한 목소리로.
(*거짓말*)
나는 문득 그녀의 집 벽에서 보았던 형광빛 지옥을 떠올렸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속에 숨은 것. 깨끗한 벽지 아래 숨겨진 핏자국처럼, 이 여자의 평온한 미소 뒤에는 무엇이 숨어있는 걸까?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완벽한 미소.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섬뜩한 미소.
"박미선씨의 집이 참 깨끗하더군요."
"네, 청결은 거룩함의 시작이니까요."
(*그래, 청결. 당신은 얼마나 많은 표백제를 써서 그 죄를 지우려 했나? 얼마나 많은 기도로 그 영혼을 씻으려 했나?*)
취조실 벽시계의 초침이 똑딱거렸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자외선 조명이 그녀의 영혼을 비춘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진짜 지옥을 보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세희를 왜 죽였습니까?“
그러지 말아야했다.
하지만 그녀를 본 순간부터 멱살을 흔들며 묻고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살리려고 죽였어요."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 여자는 그 말을 하면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목소리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에는 기묘한 안도감마저 서려 있었다.
강태식은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15년간의 수사 경력 동안 이런 답변은 처음이었다. 살인 용의자들은 대개 부인하거나, 정당방위를 주장하거나, 우발적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리기 위해 죽였다'니..
창밖으로 보이는 늦가을의 하늘은 흐렸다. 그의 머릿속도 그만큼이나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