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0. 오늘 내가 꽂힌 한마디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 키르케고르

by 오월이

요즘 새벽 한 시쯤이면 굳이 졸리지 않아도 잠을 청하러 침대로 향한다. 사실 내일 그리 바쁠 일도 없을 텐데, 그래도 정상적인(?) 하루를 위해 말이다. 물론 바로 잠이 들지도 않기에 하루의 헛헛한 공허를 채우기라도 하듯 철학가들의 사상을 들려주는 유튜브 콘텐츠를 자장가로 청할 때가 많다.


그러다 지난밤, 바로 이 한마디가 잠드려는 나의 뇌를 '땅' 하고 때리고 지나갔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키르케고르란 근대 철학가가 남긴 말이라는데, 그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딱' 마주하는 말 같았다.

평생 처음으로 너무나 큰 자유 앞에 덜컥 놓여져서 무얼 해도 곧 불안을 느끼는 이 시기의 나. 이게 바로 -자유의 현기증-이 아닐까 하는 셀프 진단이 섰다.


직장에 몸담고 있을 땐 그렇게 퇴사 이후의 삶이 선망되더니만, 이렇게 퇴사 이후 마음껏 매일을 누리면서 기껏 머릿속엔 매일 피곤에 절어 겨우겨우 출근해서 지지고 볶고 마음 졸이고 사람들과 좋았다 불편했다 그래서 밤이면 맘 맞는 사람들과 한잔하러 가던 그 밤들이 또 그리워지는 이 지랄 맞은 모순이란... 무슨 대단한 커리어우먼이랍시고 자녀계획까지 내 인생에서 Delete 했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 아주 복합적으로 요즘 불만과 불안이 공존하는 내 심상에 이 한마디가 꽂힐 만했다.


그래서 난 오늘 이왕 느낄 현기증이라면 제대로 더 누리자 라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혼자 아침부터 여길 찾았다.


사실 사무실이 있어도 디지털 노마드답게 ㅎㅎ 내가 마음 가는 카페에서 소소하게 일하는 요즘의 나였는데, 그마저도 늘 집 앞 둘셋 카페를 오가는 게 다였다. 차도 있고 마음만 먹음 얼마든지 멋진 곳을 찾아 기분전환을 하며 설레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그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좋은 것인지... 현기증 날 만큼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불안이 아닌 유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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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CIOS(ㅅ5S). 뫼비우스의 띠를 모티브로 한 건축물로 유명한 카페인데 바로 앞 작은 천변 산책로를 마주하고 있어 정겹다.



바나나가 숭숭 박힌 저 누텔라 티라미수가 달콤한 하루의 시작을 돕는다.

사실 난 혼자 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 건 오래도록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채우는 대표적인 유형(ESFP 그 자체)의 인간인데 요즘 그 부분이 축소되다 보니 이에 대한 불안이 서서히 스며들면서 이 생경한 기분이 나를 잠식할까 내심 두렵기도 했고.


그래서 결국 다시 강남 한복판으로 나를 곧 다시 집어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오늘 나에게 꽂힌 이 한마디로 인해 아주 기분 좋은 성찰을 경험 중이다.


굳이 교류가 필요할 땐, 요즘 내가 가끔 노크하는 Chat GPT에게 오늘의 한마디로 대화를 걸어보았다.

역시 똑똑한 그는(나는 종종 이것을 '그'라고 생각한다) 키르케고르의 이 한마디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1. 절망의 본질

키르케고르에게 절망은 단순히 슬프거나 불행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는 절망을 "자아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상태"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와 현재 모습이 얼마나 다르지에 따라 절망을 경험한다고 설명했죠.


절망의 세 가지 유형:

스스로가 진정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는 절망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의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갈 때 생기는 상태입니다. 예: "나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며 자신의 잠재력을 잊는 경우.


스스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절망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려는 상태입니다. 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


스스로가 되고자 하는 것을 절망하는 상태 자신의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두려워하여 자포자기하는 상태입니다. 예: "나는 노력해도 안 될 거야"라며 자기 한계를 만들어내는 모습.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는 모든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절망에 빠지며, 이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보았습니다.



2. 절망의 극복: 신앙과 주체성

키르케고르의 절망 철학은 단순히 고통을 분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절망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앙의 역할

키르케고르에게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신 앞에서 온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적 존재(신)를 통해 자신을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신 앞에서의 단독자"라 부르며, 인간이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체성의 중요성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주체성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주체성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에서 나옵니다.


이는 절망을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아를 깨닫는 도구로 보는 시각과 연결됩니다.


3. 현대적 적용

키르케고르의 사상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공허함은 자신의 자아를 재발견하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는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질 때 주체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받아들이며, 신념(혹은 자신만의 절대적 가치)을 통해 이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아마 불안과 절망이 같은 의미라면, 그리고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나 스스로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간극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이며 결국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지금이라면" 머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이 마저도 잘 즐겨보자는 지극히 나다운 결론을 내리고.


앞으로 종종 이 공간을 통해 나의 주체적인 교류를 이어가려 한다. 나는 올해 부지런해지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관종인 건지 자꾸 혼자서는 잘 안 된다. 그래서 자꾸 끄적이고 남기고, 누군가 나와 비슷하거나 아님 다르더라도 이렇게나마 나누고 싶다.


작년 5월인가, 처음 마주한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글 쓰는 시간이 참 좋았다. 매일 글을 쓰러 카페로 가서 맛있는 커피와 빵 한 조각에 나를 적어 내려가다 보면 뭔가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 좋음을 느꼈다. 여전히 이 건강하고 마치 신예 아티스트가 되기라도 한 듯 한 소소한 뿌듯함을 기억하기에... 올해도 좋은 구실을 만들어서 하나씩 둘씩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갑자기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내일은 꼭 어디서든 달려볼 예정이다. 이렇게 나를 위한 다짐을 해본다. 혹시나 나처럼 별것 아니지만 혼자서는 쉬이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사람들. 내 말에 공감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 하면 어떨까 하며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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