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아픔의 역사로 세워지다.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앙코르와트로 향하라.

by 나주희 에디터

코로나가 세상을 잠식하기 전 '캄보디아'에 여행을 갔었다.
당시 푸드스타일리스트였던 나는 세계 각지의 특이한 그릇과 각 나라의 특유 음식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

했다.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사는 게 목표였어서 세계 일주의 꿈을 품었었기에 캄보디아는 단순하게

즐거움을 위한 여행으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이곳을 여행하고 나서 한순간에 가치관이 뒤바뀌는 것을 느꼈었는데,

그때의 기분을 브런치를 통해 남겨본다.


2017년 당시 한국의 날씨는 1월이라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새어 나올 만큼 추운 겨울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캄보디아의 날씨는 모기가 없을 정도로 습하지 않았고 내리쬐는 햇빛에 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의 한 호텔에 머물렀었다. 캄보디아 총리의 딸이 우리나라 가로수길을 바탕으로 만든 곳이라 한국과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멋있는 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프놈펜에 있는 주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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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도로엔 누구도 교통법을 지키지 않고 역주행해 가는 건 기본에다 돈만 쥐어주면 경찰이 지켜주는 비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한 분들이 많았지만 빈부격차는 그 당시 불합리함을 느낄 정도로 심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손짓 몸짓을 써가며 약간의 영어와 캄보디아어 사전에 의존하며 차츰 친구와 나는 그렇게 캄보디아 사람들과 함께 스며들어갔다. 숙소에 머무르고 앙코르 와트를 가기 위해선 이동수단이 필요했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낯선 캄보디아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툭툭, OK?"


낯선 캄보디아 아저씨가 같이 여행 온 친구와 나에게 치아를 환하게 보이게 웃으며 말했다. 선한 인상의 곱슬머리를 한 분이었다. 우리는 당장 이동수단이 필요했기에 연신 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캄보디아어 사전을 펼쳐 크메르어로 말했다.


"OK, 앙코르와트로 가주세요."

일명 '툭툭이'라는 나무판자를 얹은 이동수단을 타고 친구와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툭툭이'를 처음 탔을 땐 딱딱한 나무판자에 엉덩이가 아파왔지만 나름대로 재밌었던 것 같다.

한국에선 겪어보지 못할 이색 체험이랄까? 비포장 도로를 지나갈 때마다 달그락거리면서 스릴 있는 운행이 계속되었다. 버스가 한대 지나갈 때마다 모래먼지를 뒤집어써 귀에 먼지가 들어차고 가방은 모래먼지로 수북하게 쌓였지만 특이한 경험이었기에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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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를 방문하기 전, 우리는 캄보디아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알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데 바로 킬링필드이다.


킬링필드는 학살을 의미한다. 1976년 크메르 루주는 시아누크 국왕을 연금시키면서 국명을 민주 캄푸치아로 바꿨었는데 황폐화된 농업 조건에서 프놈펜에 몰려든 난민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미국 식량지원도 기대할 수 없어 프놈펜 난민들이 농촌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캄보디아 공산당은 창건 때에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마오이즘을 추종했고, 프랑스 유학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크메르의 수장 폴 포트에 의해 학살이 벌어졌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폴 포트가 캄보디아를 사회주의로 개조하려는 중에 생긴 것이 킬링필드인데 그 당시에 지식인과 부유층 등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죽임을 당하는데 해당되는 사람은 피부가 하얀 사람, 지식이 있어 보인다고 안경을 쓴 사람, 손톱이 긴 사람, 심지어 어린 아기까지도 학살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에 도착한 나와 친구는 감정이 교차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많은 이들의 희생 끝에 지어진 앙코르와트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아픈 역사를 알자 캄보디아 사람이 아님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1달러"


캄보디아의 어린아이가 고작 해봐야 약 천 원에 해당하는 돈을 달라고 했다. 우리에게 천원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함부로 쓸 수 있는 돈이었지만, 그들에겐 생계나 다름없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내가 이들의 마음을 단 10분의 1이라도 알 수 있는 걸까? 친구와 나는 주머니에 있던 돈을 그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맞아. 1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고작 해봐야 천 원인데 누군가에겐 생계비가 되네...

그동안 너무 감사함 없이 살았던 것 같아... 캄보디아가 아픔을 잊고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친구와 나는 한참을 그 아이가 지나간 자리를 쳐다봤다. 공허함이 남으면서도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앙코르와트는 건축물만 멋있는 것이 아니라 학살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캄보디아 사람들의 마인드가 멋있는 것이라고. 캄보디아의 여행을 회상하자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캄보디아 여행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학살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이겨내고 삶의 의지를 찾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것처럼 캄보디아 사람들도 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힘들지라도 분명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 건 캄보디아 여행을 하고 나서였다. 한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보면서 배울 점을 얻어가는 것. 이날의 기억은 지금 내게 있어서 삶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캄보디아라는 나라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가죽 타공 핸들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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