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장미 정원에서
'마이 그린 테이블' 작업을 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자주 들춰보고 있다. 줄리아 카메론은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해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시나리오를 함께 집필한 작가이자 문예창작 강사, 작곡가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틴 스콜세지와 이혼한 후 지독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빠져 심연을 헤맬 때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이 바로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직업을 물으면, 나는 대개 '작가 겸 연출가이고 창조성을 일깨우는 강사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창조성이라는 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창조성을 일깨우다뇨? 창조력을 가르쳐준다는 말인가요?"
그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일은 할 수 없어요. 단지 사람들 스스로 창조성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줄 뿐이죠."
"그럼 우리가 원래부터 창조적이라는 말인가요?"
이쯤 되면 그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 된다.
"그럼요."
"정말로 그렇게 믿으세요?""
내가 어떤 것에 이끌려 이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을 전공할까 공부를 더 할까 고민했었다는 것과 연결짓기는 것은 이미 효력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연이 이끈 행로는 쏠쏠한 재미를 곳곳에서 전해주고 있다. 줄리아 카메론의 말대로 '나이나 인생살이에 상관없이, 예술 분야를 직업으로 하든 취미로 하든, 창조성을 일깨우려는 노력은 결코 늦었거나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작업하면서 자연스레 깨우치고 있었다.
이번 조합은 에그페투치니, 그린빈, 로즈마리, 애플민트. 담장 밖으로 흐드러진 흰장미들을 표현해보았다. 레드와 블랙 배경은 언제가 평균 이상의 임팩트를 전달한다. 하지만 자주 활용하지는 않는다. 강한 인상도 자주 보면 무뎌지니까.
사람들이 궁금한지 가끔 물어본다. 작업실이 따로 있나요? 카메라 기종은요?
그럴 때면 이렇게 대답한다. 부엌 싱크대 한켠에서 사부작사부작 궁리하고, 휴대폰으로 기록한답니다. 요즘 휴대폰 성능들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다양한 모양의 스파게티 면들과 향내가 개성 있는 허브들은 '마이 그린 테이블'의 단골 출연자들이다. 얼마전에는 오징어먹물 스파게티면까지 할인하길래 냉큼 집어와 재료 서랍장이 더욱 풍성해졌다. 허브들도 비교적 보존이 오래 잘 되는 편이라 배경을 좀더 따뜻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잘 활용할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마트에서도 그냥 지나칠 법했을 색다른 재료들이 어느새 내 주방 한켠에서 새로운 그림의 주인공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두 눈 말고도 창조의 눈 하나가 더 생겨난 느낌이다. 사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