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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 그 어색함을 아시나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10

by 메이쌤

나는 현재 재직 중인 학원에서 5년 차인 영어강사다. 모든 업종이 그렇겠지만 한 가지 일을 5년 이상하다 보면 어느 정도 따라오는 숙련도가 생긴다. 강사 일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진행했던 레벨의 수업을 하는 게 어렵지 않게 되고, 이전에 했던 수업을 보완 수정해서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지난 경험을 살려 아이들이 어려워했던 부분을 바탕으로 학부모와사전 상담을 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제가 말씀드렸죠 어머님?' 하는 노련미 있는 상담도 가능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5년 차 강사인 나에게도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경력이 있는 강사에게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수업이 있다. 어제 나는 딱 그런 수업을 진행했는데 오랜만에 정말 재미없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수업을 했다. 내가 내수업을 봤어도 정말 딱 노잼이었다.



동네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님기 (4).png



나와 수업을 해보지 않은 처음 만난 친구들과, 일회성으로 하는, 대형 클래스



사실 저 조건들이 하나씩만 있는 경우에는 또 나름 방법이 있다. 나를 모르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데면데면하게 구는 게 너무 당연한 거라 시간을 가지고 지내다 보면 친해질 수 있다. 이벤트성 수업은 오히려 한 번으로 끝인 경우가 많아서 재미있다는 기억이 남거나, 유익했다는 인상을 주면 성공적이다. 대형 클래스도 짝 활동을 한다거나 팀 게임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분위기를 풀 수 있다. 하지만 저 조건들을 함께 붙여 놓으니 아주 어마어마했다.


" 안녕, 얘들아 오늘 특별수업하러 모인 친구들이지? "

"..."


열두 명의 중2들이 단체로 뭐하는 거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 근무하는 학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처음이다. 오.. 당황스러운데?


반편성을 하다 보니 다른 선생님들이 맡기 싫어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클래스를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수준은 천차만별이었고 내가 이름을 아는 친구들은 딱 2명이었다. 너희라도 있어 다행이다.

또 할 내용이 정해져 있어 분위기를 풀어가며 농담하나 던질 여유가 없었다. 한 시간에 이 모든 걸 끝내야 한다.


" 자 오늘 조금 바쁘겠지만 핵심위주로 설명할 테니까 필기 열심히 하시고, 혹시 이 단원 안 배운 사람?"

"..."


이런 경우 아이들을 다그쳐서는 절대 안 된다. 레벨이 다른 3개의 반 학생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자기들도 낯선 친구들과 섞여 있는 게 얼마나 서먹 하겠는가.

..그래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등에 땀이 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 괜찮아 너희끼리도 안 친해서 대답하기가 어렵지?, ㅇㅇ야 친구들 평소에도 이렇게 다들 침착하고 차분하고 의젓하고 그러니?"

" (절레절레) "


한 친구가 소리 없이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표현하자 그제야 몇몇 친구들이 배시시 웃는다. 원래 이렇지 않다는 거 선생님도 다 안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때부터 원맨쇼가 시작된다. 나 혼자 설명하고, 아이들은 눈빛을 대답하고, 나 혼자 그걸 캐치해야 하는 그런 수업.




학교나 학원에 처음 수업하러 가는 날은 학생들이 모두 긴장한다. 아는 친구도 없고, 어떤 분위기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니까. 당연하다.

근데 그건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조금 다른 이유이긴 하겠지만 강사들도 첫 수업의 쑥쑥 함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꽤나 시간이 필요하다. 첫 만남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이전에 수업해본 친구들이면 반가워하고, 처음 만난 친구들과는 함께 규칙을 정하고 지켜가자는 약속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 그 서먹함이 싫진 않다.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개조(?) 해나갈까 생각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영원히 새학기가 반복되는 이 느낌, 강사만이 느낄수 있는 기분아닐까.


첫 수업의 그 어색함,

학생들만 아는 게 아니다. 아닌 척 하지만 사실 선생님들도 똑같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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