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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학원에서 그런다고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11

by 메이쌤


학원일에서 생각보다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건 학부모 상담이다.

고등부, 단과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초중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강사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가끔 재미(?)도 있다.


특히 초5~중2 사이의 학부모들은 아이의 사춘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손위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고, 가정 이외의 곳에서 아이의 행동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밖에서의 태도가 아주 좋은 경우에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걱정스러운 경우에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번 학기에 나는 5~6학년 학생들도 지도하고 있다. 두 명의 학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A는 최근 목소리가 커졌다.

성적이 조금 오른다는 자신감이 붙었고 세상의 중심은 '나' 버전의 사춘기를 겪고 있어서 교실에서, 학원 차량에서 목소리 조절이 안된다. 이 정도는 귀여운 편이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컴플레인이 들어와 학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일상적인 이야기 한 스푼, 성적상담 한 스푼, 다음 학기 시간표 안내 한 스푼, 슬쩍 본론을 꺼낸다

"어머님 요새 A 집에서는 좀 어때요, 예민하진 않나요?"

" 어머!!! 혹시 학원에서도 그러나요? 어떤가요? "


어머님의 헉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서도 예민의 극치를 달리고 있단다. 공감 한 스푼, 전문성 이 첨가된 멘트 한 스푼.


" 어머님, 제가 사춘기 학생들을 몇 년째 반복적으로 보고 있잖아요 딱 보면 알죠, A는 최근 다른 친구들이 자기 성적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고 1등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수업시간에는 예민하진 않아요. 그런데..."

" 집에서는 대답도 잘 안 하고, 학원생활이나 학교 이야기도 일절 안 해요 "

" 이전에 비해서 A가 자기주장이 확실히 분명해지긴 했어요. 학원 차량에서도 목소리 크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긴 하지만 아직 친구들이랑 트러블이 있거나 한건 아니니 다행이에요 "

" 학원에선 목소리가 큰가요? 우리 애가 요? 차량에서는 조용히 하도록 주의시키겠습니다 선생님"


집에서는 방문 닫고 학교 이야기, 학원 이야기 전혀 안 한다는 A가 학원에서는 목소리가 크다는 이야기가 너무 놀라우셨는지 깜짝 놀라시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참 집 안팎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은 그걸 모른다. 나만 아는 이야기, 내용이 가치 있어지는 순간부터 상담은 크게 어렵지 않게 된다.


영어강사로 살아남기.PNG
B는 이른 사춘기가 왔다.

내가 알파벳부터 가르친 B는 벌써 5학년이 되었다. 언제 이만큼 컸나 보면 내가 낳은 것도 아닌데 내 자식 키우는 기분이라 묘하다. 최근 B는 자세가 영 안 좋다. 짝다리를 짚거나 반쯤 누운 모습을 종종 보인다.


"안녕 얘들아 오~ B 씨, 자세가 멋지긴 한데.. 좀 불편해 보이시네요? 똑바로 앉으시면 좋겠습니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무심한 태도로 반쯤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B를 향해 인사를 던졌다.


" 요새 사춘기라 그래요! "

깔깔 웃으며 다른 아이들이 대신 답한다. 아이들끼리도 사춘기라는 단어가 변화의 시작인가 보다.


아직은 마냥 애기인 줄 알았는데 벌써 짝다리를 짚다니.. 언제 다 컸나 몰라...

괜히 찡해진다. 이상한 데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다행히 아직은 B는 배시시 웃으면서 아니에요, 짧게 대꾸하고 자세를 고친다. 그래도 선생님 들어온 거 보고 똑바로 앉는 거 보니 아직 다행이다. 슬쩍 어머님께 전화 한 통 해야겠다.





초중등을 지도하는 강사에게 상담이란 숙제와 같다. 하긴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고 별거 아닐 때도 있다. 결국 상담이란 학부모가 모르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집 밖의 아이의 모습. 우리 애가 그런다고요? 전혀 모르는 반응이 나오면 오히려 성공이다. 학부모는 모르지만 나만 아는 모습. 그 모습을 전달하면 학부모는 상담을 기다리게 된다.


물론 좋은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는 전달하기 힘들다.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요 류의 학부모는 진짜 존재한다. 쉽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거라면 이왕 할거 진심으로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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