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22
학생들의 내신 대비는 그 나름대로 치열하다. 나야 영어만 가르치면 되지만 적게는 7과목에서 많게는 12과목까지 시험을 보는 학교도 있다. 그 압박 자체가 부담이다 보니 시험기간에는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흡사 좀비 비슷한 상태가 된다. 이 좀비모드의 학생들에게도 단골 멘트가 있다.
"선생님 배고파요..."
"선생님 네 시간밖에 못 잤어요.."
재미있는 점 은 실제로 지친 학생들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느라 먼저 지친 학생들의 멘트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래서 시험기간은 누구에게나 힘든 기간인가 보다. 한 달의 내신 대비. 주말 보강은 물론 한껏 지친 상태로 직전 보강까지를 마무리한다. 시험 잘 치든 못 치든 끝나고 꼭 연락하라는 말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뒤통수들이 기특하다.
중학생들 내신 대비를 하는 선생님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중학생 내신 성적은 선생님을 갈아 넣은 거라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중학교 시험에서 90~100점 받는 학생이 10명 있다고 치면 그중 고등학교 가서도 그 성적이 나오는 학생들은 절반이 조금 안된다. 과학적 통계자료는 아니고 현장 통계 정도라고 해두자. 그래서 한 문제 차이로 슬퍼할 필요 없다고 말해도 중학생들 사이에서 96점과 100점은 으스댐의 정도가 꽤나 다르다. 그런 거 보면 또 귀엽다.
고등학교 가서 반 평균이 50~60점대로 떨어지는걸 처음 보는 학생들은 충격에 빠진다. 그 와중에 성실하게 내신 범위에 몰입해서 90점 이상을 받아 오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내신에 대한 감을 빠르게 잡은 편이다. 모의고사 성적과 내신성적이 같이 가면 좋겠지만 모의고사 1~2등급, 내신 3등급인 학생은 실제로 존재한다. 모의고사가 실력과 운이라면 내신은 성실인데 모두 다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생각 많은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얼른 집 가서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시험 잘 치라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시험 잘 쳐 끝나고 연락해!
나도 학생들에게 연락처 공유하는 것을 망설였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특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카카오톡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페북,인스타는 많이 하는데 내가 안 하니까 접점이 없다. 그래서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오히려 편한 점이 더 많아졌다.
시험 치는 날 당일. 점심을 먹고부터는 괜히 휴대폰을 힐끔 쳐다본다. 마치 내가 오늘 받아야 할 성적표가 있는 것처럼. 열심히 준비했으니 결과가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혹시 몰라서 배터리 충전도 시켜놓는다.
전화나 문자로 연락이 왔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쌤~! 기대보다 잘 친 경우 목소리가 한껏 올라간다. 반대로 쌤......... 말줄임표가 길어지면 기대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경우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결과는 나왔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고생했다는 말로 우리의 중간고사를 마무리한다. 한숨 돌리고 기말고사를 준비해야지.
고생했다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