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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Jun 11. 2021

하지 말라는것만 가르치는 명령문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24

* 비정기적으로 들고 올 이야기 영문법 시리즈입니다


나에게는 소명이 있다. 스스로 정한 나의 직업의식.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게 하자'. 

나도 학생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배웠고 지금은 가르치고 있다. 여태 보아온 영어 교과서, 문제집, 모든 서적을 합치면 아마 셀 수도 없을 거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예문들은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거나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이라는 표현을 쓴 건 그나마 최근에 나오는 교재들은 꽤 신경을 쓴 부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명령문 이야기.




명령문은 초등 저학년 때는 표현으로, 초등 고학년 이상 중학생들이 문법 시간에 배우는 부분이다. 보통 동사원형으로 시작하면 ~해라! Don't로 시작하면 하지 마라! 정도만 가르친다. 사실 엄청 까다롭거나 어려운 단원은 아니다. 한국어로도 우리는 이미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다섯 가지 표현을 한번 살펴보자. 아주 흔하게 우리가 배워왔고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표현이다. 


Be Quiet! (조용히 해)

Sit down! (앉아)

Stand up! (일어나)

Don't run! (뛰지 마)

Don't speak Korean! (한국어 하지 마)


이 정도 표현을 이해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영어단어가 어렵지 않아서? 표현이 쉬워서? 우리가 많이 쓰는 표현이라서? 모두 다 맞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영어책에서 많이 쓰는 지문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표현도 한번 읽어보자 


Be happy!

Be nice!

Give way!

Walk slow!

Sing a song!




일부러 해석을 바로 달지 않았다. 실제로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문장이다. 동사원형으로 시작했으니 문법적으로 맞는 문장인 거 같긴 한데 뭐라고 해석해야 하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 거리길래 직접 물어봤다. 왜 우리는 이런 문장이 낯설까? 


'처음 봐서요! '

'하지 말라는 건 봤는데 하라는 건 많이 못 봤어요'


아이들이 답변이 오늘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영어 형식의 문제도 분명 있을 거고 단어 수준의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교재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예문이 하라는 예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아이들은 당연히 명령이라는 한국어 어감뿐만 아니라 하지 말라는 예문에 대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Be happy! 행복하자! 

Be nice! 착하게 대해줘! 

Give way! 양보하자!

Walk slow! 천천히 걷자!

Sing a song! 노래하자!


세상에 하지 말라는 건 너무 많다. 지각도 하면 안 되고, 성적이 떨어져서도 안되고, 편식해서도 안되고, 숙제를 까먹어서도 안된다. 친구랑 싸워서도 안되고 학교에서 뛰어서도 안되고 버릇없게 행동해서도 안된다. 한번 만져 보고 싶은데 아무거나 만져서도 안되고 큰소리로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 되는 곳이 더 많다.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도 하지 말라는 통제의 연속일 거다. 영어책 예문에서 금지의 명령문을 없앨 순 없겠지만 '해도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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