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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Jun 13. 2021

중1, 공부가 지독히도 싫은 나이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25

" 쌤 설마 이거 숙제였어요?"

" 쌤, 펜이 없어요"

" 노트 안 가져왔어요"

" 아는데 실수한 거예요"


강사들의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몇 문장이 있다. 휴일마저 머리 아프고 싶진 않지만 오늘 글에서 말하려고 하는 중1 한 반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문장들이다.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니까.


현재 수업 중인 중학교 1학년 중 한 반은 상당히 다루기가 까다롭다. 인원수는 4~5명 많지 않은데 다들 소극적이어서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원맨쇼 말고는 들을 수 있는 대답이 거의 없다. 영어학습 기간도 대체로 3년 미만이라 모르는 단어도 수두룩, 모르는 발음도 많다. 문법 학습은 당연히 어렵고 규칙은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한두 명을 빼놓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필통을 챙겨 다니지 않는다. 노트를 들고 다니라고 3개월째 말해도, 심지어 이름 써서 한 권 건네줘도 그때뿐이다. 이전 시간과 오늘 수업의 연계를 위해 필기를 뒤져보고 하는 그런 과정 조차 어렵다. 너무 많은 틀림 표시는 자존감을 깎아먹는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틀린 문제를 연필로 슬쩍 고치고 동그라미를 한다. 선생님은 다 안다. 모르는 척해주는 것뿐이다.


어느 학원에서나 만날 법한 클래스의 이야기다. 사실 이런 학생들이 다수일 텐데 초점을 이리로 돌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먼저, 이런 학생들은 하나의 개념을 익히는데 반복이 많이 필요하다. 학부모님들은 본인 아이의 상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 아이가 습득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가 궁금하시면 단순하게 한국어 배울 때 생각해보면 된다. 물론 기억이 잘 안 나시겠지만. 제한된 수업시간의 특성상 숙제를 통한 반복이나 복습은 반드시 필요한데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은 숙제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냥 하기만 한다. 혼나면 안 되니까. 그럼 많이 틀리게 되고 자존감은 점점 낮아진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숙제를 최대한 쉬운 반복문 제로 바꿨다. 응용문제 이런 건 하나도 안 냈다. 똑같은 문제를 지겨울 때까지 반복하게 한다. 그럼 최소한 숙제는 해온다. 숙제를 마주했을 때 내가 못 푸는 문제라는 두려움을 줄여줘야 한다


두 번째는, 하나의 개념을 알 때까지 그거만 해주기를 바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학부모도 학생도 둘 다 바라지 않는다. 6개월째 be동사, 일반동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100점을 받지 못해서 자꾸 그거만 시키면? 학부모는 당연히 학원의 커리큘럼 문제인 줄 안다. 왜 6개월째 진도가 안 나가죠? 왜 똑같은 거만 하죠? 아이가 한국어와는 다른 특수한 개념을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라는 걸 갈수록 잘 모르시는 것 같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계속 같은 이야기만 하면 지겹다고 생각한다. 막상 문제를 쥐어줬을 때는 헷갈리고 어렵지만 지겨운 건 지겨운 거다.

  많은 진도를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고 6개월간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했다. 하지만 또 하나만 하면 지겨워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단원 정도를 가지고 얕게 무한 반복을 한다. 50분 수업시간에 20문 제도 못 푸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시간에 오면 또 다 잊어버리고 새로 수업하는 한이 있더라도 6개월에 책 한 권 이런 목표가 말도 안 되는 클래스도 반드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는 선생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은 정말로 어렵다. 나도 상위권 학생들 위주로 수업을 많이 하다가 이 클래스를 살려보자고 들어갔을 때 사실 당황을 많이 했다.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좀처럼 아이들에게 화내는 법이 없는 나도 가끔은 '이 반은 진짜 수업하기 쉽지 않네'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전에 1년을 가르친 선생님이 가끔 얼굴에 김을 뿜으며 찬물을 마시던 장면이 한 번에 이해가 됐다. 선생님도 사람이다 보니 극한 상황에서 감정 컨트롤이 늘 쉽지는 않다. 너무 말이 많거나 산만하거나 하는 반도 수업이 어렵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수업 전에 수업 준비가 필요한 반이 있고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반이 있다. 선생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1, 공부가 지독히도 싫을 나이다. 왜 해야 하는지도 아직 잘 모른다. 어떻게 하는지는 더 모른다. 초등학교에서 벗어나자마자 너희는 중학생이니까!라는 말로 회초리를 맞는 기분일 거다. 너무 많은 과목에 시험의 연속. 난이도는 시간이 지나는 거에 비해 너무 쑥쑥 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숙제는 너무 많다. 평균, 평균 그놈의 평균,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내가 못하는 걸 공부 안 해서 라고만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감당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저 작은 머리통도 나름대로 괴롭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학원은 시간과 공간의 방에서 탈출하고 싶은 아이들과 마인드 컨트롤하는 선생님 그리고 투입한 교육비용을 점수로 환산받고 싶어 하는 학부모님의 마음이 뒤섞인 복잡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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