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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Jul 04. 2021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26

누구나 가끔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별거 아닌 질문인 거 같은데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


7월, 1학기 기말고사를 치고 나면 고등학생들은 방학인 듯 방학 아닌 방학을 보낼 준비를 한다. 고1들은 처음 경험하는 보충수업에 당황하고 고2들은 그러려니 한다. 어지간한 고3들은 불안함에 정신이 약간 다른 곳에 가있다. 아직 꿈 많은 고1들은 기말고사만 끝나 봐라를 외치면서 저마다의 버킷리스트를 재잘재잘 떠들어 댄다. 


"시험만 끝나면 웹툰 몰아볼 거예요"

"저는 떡볶이 먹으러 갈 거에 요"

"전 친구들이랑 놀러 가려고요"


채점하면서 가만 들어보면 어제도 떡볶이 먹는다고 했잖아?  초를 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거랑 그거랑 다르다고 할 모습이 벌써 떠올라서 잠깐 들어준다. 잠깐 쉬는 시간을 만끽하며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줄줄 말하는 학생들이 갑자기 타깃을 바꿔 질문한다.


" 쌤은 시험 끝나고 뭐하실 거예요? 집에서 뭐하세요?"


고등학생쯤의 시험기간에는 학생이고 학원 선생님이고 같이 시들어 간다. 이 시기는 우리만의 전쟁이고 우리는 약간 전우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만의 그렇고 그런 연결된 감정이 있다. 이건 진짜 해본 사람만 안다. 결과가 좋으면 당연히 더 좋지만 좋지 않아도 어쨌든 그 기간을 견뎌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성실한 학생도 성실하지 않은 학생도, 열정 넘치는 강사도 그렇지 않은 강사도 그냥 다 같이 피곤한 시기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에게도 시험이 끝나고 버킷리스트가 있는지 묻는다. 


"나는 말이야.."

 

후 하는 짧은 뜸 들임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면 아이들은 뭔가 대단한 걸 말할 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다린다. 내가 사실 너희들 놀리는 맛으로 강사 하는걸 애들은 알까.


" 너희 기말 시험지 매겨야지 "


아 쌤!!! 하는 소리로 교실은 잠깐 뒤집어지고 그에 딱 맞춰 채점이 끝난 프린트를 학생들 손으로 돌려준다. 이제 그만 떠들고 각자 틀린 문제 고칠 시간인걸 아는 아이들은 너무 하다며 투덜거리면서 돌아간다. 슬쩍 웃으면서 각자 할거 시작하라고 하니 금세 자기 프린트물로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에 어깨를 툭툭 쳐줬다. 


다음 채점할 프린트를 보면서 잠깐 생각을 한다. 나는 시험 끝나면 뭐하지? 집에서 뭐하고 놀지? 나는 애초에 혼자 놀기의 달인이기 때문에 꼭 누군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뭔가 자극적인 게 필요한 성격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받아본 질문에 잠시 답변을 생각해본다. 오래 고민할 것 없이 치킨에 맥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신난다. 이래서 애들이 시험 끝나고 하고 싶은 거 생각하는구나. 갑자기 나도 같이 신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채점을 시작하니 학생들은 드디어 선생님도 피곤해서 이상해진 거 아니냐면서 수군거린다.


나는 학생들이 영원히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현 고3 학생들은 당장 6개월만 지나도 나와 같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성인이 될 거고 그건 나와 그들이 같은 사회에 속해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고 싶고 말을 선택해서 할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치맥 해야지 하는 말 한마디 뭐 어때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나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미성년자들과 음주 토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치맥이라는 소소한 나의 계획을 비밀에 부쳤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에서 너무 남발하는 단어라 내가 조심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적도 있지만 그래도 보고자란 어른 중에 미성년자와 음주 토크하는 걸 꺼리는 어른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뭐할 거냐는 간단한 질문에 이런 생각까지 하는 나를 다시 돌아보면 좀 웃기긴 하지만 뭐 어떤가. 브런치는 나의 공간이니까 말한다. 쌤은 기말고사 대비 끝나면 치맥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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