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쌤 Nov 10.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날은 온다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33


날씨가 쌀쌀해진다. 출퇴근 시간의 일교차가 슬 신경 쓰인다. 옷의 두께를 신중하게 골라야 할 즈음이면 그날이 다가온다. 수능 날 유독 춥다는 입시 한파. 사실이든 아니든 그날이 다가온다.


아무리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수능이 가지는 그 의미 자체는 여전하다.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수능 날이 고등학교 3학년의 끝을 알리는 지점이다. 학교나 전형에 따라 다르지만 수시 모집 결과도 슬슬 나오고 있어서 아이들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사실상 지금부터 일주일은 감을 유지하면서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보낸다. 


언제 11월이 왔나 싶지만 매년 수능 날은 온다. 어떤 아이들은 공부가 이제야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 다른 아이들은 시간이 더 있어도 비슷할 거 같다며 빨리 수능이나 치고 싶다고 한다. 


수능이 끝나면 마치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말은 삼킨다. 먼저 해봤다는 이유로 다 알려 주려 하는 건 내 입장에서는 조언이고 충고지만 학생들 입장에선 인생을 스포 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제발 오지 마라 바랐던 날도 있었던 것 같다. 제발 조금만 더 빨리 와라 바랐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날이든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는 걸 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하루를 꽉꽉 채워 썼던 날도 있었고, 죄책감이 찾아 올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낸 날도 있었다. 그래도 하루는 흘러갔고 다음날은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었다. 


학생들과 지내다 보면 시간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된다. 문장 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해석해내는 걸 보면 새삼스럽다. 이전에는 눈에 물음표를 가득 담고 있던 학생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답을 골라낼 때면 나는 무엇보다도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간다. 공평하게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나고 다른 학원 가야 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