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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Dec 13. 2022

유럽 땅 한번 밟아보고 올게

메이의 유럽 여행기, 메유기(1)

정확히 시기를 정해두지는 않지만 큼직한 목표를 하나 세워두면 언젠가 꼭 이뤄낸다. 해외 경험이 많다고 자부할 수 있음에도 유럽 대륙 근처도 안 가봤다는 사실이 내내 걸렸었는데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정말 다녀왔다. 확실히 내가 알던 다른 세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고, 또 어느 정도 예상대로였다. 앞으로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를 유럽 여행이기에 이 기억을 차곡차곡 기록해두고 싶었다.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메유기(메이의 유럽 여행기)'라는 이름을 달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3주간의 유럽 여행기를 천천히 발행해 볼 예정이다.




나는 8년 동안 중국에서 유학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2년 만에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고 미국과 남미까지 두루두루 여행하고 다녔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나랑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음에 살 곳은 영국이라고 내 마음대로 정했다. 그런데 막상 영국에 가려고 보니 쉽지 않아 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었다. 돈도 없었고,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가면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에서 영국에서 디지털 마케터로 살고 있는 분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고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웠다. 일단 한국에서 마케터로서의 전문성을 다져놓고, 돈을 모아서 훗날 영국에 가서 이걸로 먹고살겠다! (계획이라기 보단 위대한 포부 같은 느낌이군...) 

전문성을 다지겠다며 스타트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끝도 없는 성장의 궤도에 들어섰다. 막상 취업을 하고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 난리도 아닌 통에 그때 무작정 영국으로 떠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그렇게 한국에서 등 따습고 배부른 나날이 지속되었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자부심이 되면서 유럽에 가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점점 흐려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알쓸신잡 독일 편의 하이라이트를 보게 되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독일 프라이 부르크의 보봉 마을... 전기를 친환경으로 자급자족하는 그런 마을이 있단다. 알고 보니 프라이 부르크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 도시였다. 보봉 마을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심지어는 남는 전기 에너지로 수익창출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집에서 쓰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단열되게 하는 패시브 하우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쯤에는 이미 그곳에 매료되어버렸다.


스타트업에서 주야장천 외쳐대는 높은 목표와 폭발적인 성장을 추구하느라 내면의 불안함과 싸우는 나와 비교되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유롭고 안정되어 보였다. 전기를 마구잡이로 쓰지 않고 아껴 쓰면서 저녁이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청하고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마을에서의 삶...! 20대 초반이었으면 지루한 핵노잼 삶처럼 보였겠지만 어엿한 30대에 들어서자 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마치 천국 같아 보였다. 



나는 마치 MZ세대의 표본처럼 '저기 살면서 브이로그만 찍어도 유튜브 대박각인데...'라는 생각이 사실은 먼저 들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단 한순간도 여유로움을 느껴 본 적이 없는 나는 한 때 꿈꿔왔던 유럽에서 살아보기를 다시 고려해보게 되었다.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시골도 아니라서 인종차별 걱정이 덜하고 친환경 도시인 프라이 부르크는 너무나 제격인 곳처럼 보였다. 황급히 끓어 오른 마음을 일단 진정시키고 언젠가 저곳에 가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회가 오리라... 갈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그리고 몇 달 후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를 결정했고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에 동료들이 '메이! 어디 몇 달 여행이라도 다녀와요!'라고 할 때 '나 유럽으로 떠날 거야!'라고 했었다. 퇴사 전에 이력서 메일을 보냈던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와서 '앗 아직인가?' 했지만 결국 그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돌아보니 프라이 부르크가 한번 와보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 기회인 것 같으니 이번에 다녀와야겠다. 


예전이랑 다르게 혼자 가려니 조금 무서워져서 같이 갈 친구들을 물색해보았지만 친구들도 생업에 바빠 급작스러운 유럽 여행에 동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혼자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혼자 간다고 별 일 있겠어?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거야~! 유럽 땅 한번 밟아보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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