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의 유럽 여행기, 메유기(2)
나는 완전한 자유주의 여행자다. 여행의 계획에 있어서 비행기 표와 숙소만 예약을 해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처음 갈 도시는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에 가려면 일단 직통으로 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찾아보니 세 가지 정도 루트가 있는데
[프라이부르크 가는 방법]
1. 프랑크푸르트에 내려서 고속열차 타고 프라이부르크로 가기.
2. 스위스 취리히에 내려서 버스 or기차를 타고 프라이부르크로 가기.
3. 스위스 바젤에 내려서 버스 or기차를 타고 프라이부르크로 가기.
나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을 검색했더니 바젤이 나와서 바젤 공항 루트를 선택한 것이었다. 바젤에 굳이 만나고 싶은 친척이 있거나 스위스 바젤에 큰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은 첫 번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직항 비행기도 있고 고속 열차를 타고 꽤나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이걸 보시는 분들은 꼭 첫 번째 방법으로 가시길!
어쨌든 캄캄한 밤이 되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는 게 내 목표였다. 모든 시간을 고려했을 때 [한국-파리(경유)-바젤] 항공편이 제일 적당해 보였다. 경유지에서 오래 동안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경유 시간이 가장 짧은 편으로 예약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기 경유는 변수와 시간의 고통스러운 싸움이라는 걸, 이 선택이 내 여행의 시작을 재앙으로 바뀌게 하는 선택이었다는 걸 몰랐다.
출발 당일,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그동안 비행기를 수 없이 타보았고 연착? 뭐 항상 있는 일이었다. 근데 문제는 경유 시간이다. 내가 1시간을 경유하는 루트의 비행기를 예약했기 때문에 파리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그 비행기를 못 타게 된다. 3시간 뒤에 경유하는 비행기가 있었지만 이미 만석이어서 그 비행기로 예약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꼬박 5시간을 파리 공항에 묶여 있어야 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연착돼서 정신없었지만 결국 출발을 했다. 항공사는 에어 프랑스. 타자마자 불어의 향연..! 귀를 말랑 말랑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그제야 혼자 떠나는 유럽 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막 두근거렸다.
그 설렘도 잠시, 아가들이 빼액 질러대는 소리에 잠을 자기 어려웠다. 그리고 디스크가 삐죽 튀어나온 내 4번, 5번 척추가 심각하게 아팠다. 계속 일어서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유럽에서 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까 봐 진지하게 걱정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기내에 진통제도 안 챙겨 왔다. 도착을 2시간 정도 남기고서야 뒷자리 3석이 다 비어있는 걸 알아챘다. 담요를 가져다가 거기에 누웠다. 좀 살 것 같았다. 나 말고도 주변 빈자리에 누워있는 승객들이 많았는데 나는 K-정직하게 내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있느라 허리를 고생시켰다고 생각하니 내가 미련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장시간 비행 체크 리스트에 아래 세 가지를 필수사항으로 두리라 다짐했다.
무조건 직항만 탈 것
진통제 필수로 챙길 것
뒷자리 비어있는지 확인할 것
드디어 파리에 도착! 샤를 드골 공항은 여느 공항처럼 생겨서 여기가 파리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주변에 보이는 공항 내 상점 간판들이 프랑스어로 되어있어서 간신히 프랑스 분위기가 났다. 경유를 혼자 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예전에 쿠바 갈 때는 든든한 동생 두 명과 함께 했기 때문에 길을 잃어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이 경유 시스템에 대해 안내해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는 프랑스인 직원을 붙들고 내 짐이 어디에 있느냐며 계속 물어봤다. 그 직원은 '네 짐은 잘 갈 거니깐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줬다. 딱히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까지 확신에 차서 말해주는 걸 보니 믿음이 갔다. 그리고 5시간 동안 파리에서 꼼짝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배가 고픈데 먹을만한 것을 파는 곳이 없었다. 분명 편의점은 있었지만 내가 먹을만한 걸 팔지는 않았다. 주변에 아시안이 정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유하는 곳으로 갔더니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계셨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다가와 "학생 혹시 한국인이에요?"라고 물으셨다. 아, 나도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나 보구나... 게다가 학생!? 먼 유럽 땅 파리 공항의 작은 경유 게이트에 아시아인은 우리 셋 뿐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위스에 따님이 사신다고 하셨다. 가족과 스위스 기차여행을 가신단다. 나는 여기에 혼자서 왔고 독일에 갈 예정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용감하다며 칭찬해주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어색해져서 손사래를 치게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경유 비행기를 탔는데 무슨 고속버스처럼 작고 엄청나게 흔들렸다. 도대체 지금 몇 시간 째 이동 중인지... 거의 졸도하다시피 기절해서 잤던 것 같다. 눈 감았다가 뜨니 도착. 밤 11시 23분에 바젤 공항에 내렸는데 Flix 버스 막차가 11시 45분이었다. 미친 듯이 가방을 찾고 뛰면서 온라인에서 프라이부르크행 Flix 버스표를 예매했다. 가까스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으면 몇 십만 원을 내고 택시를 타야 할 뻔했다.
원래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이미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곧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려서 에어팟을 꽂고 노래도 들었다. 유럽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