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로 쓰는 영화감상기 2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위로공단'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어쩌면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에게 바치는 노동의 노래다. 지독한 삶에 대한 은유이며 현실에 대한 잔혹한 고증이다. 머나먼 70년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 고증은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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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로 공단'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던 평화시장에서부터 한진중공업과 기륭전자의 고공투쟁, 하늘 위에서 네 배의 피로를 견디며 살아가는 승무원과 타국에서 한국의 70년대를 재현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여공들과 이주노동자, 낭랑한 목소리로 세상을 열어주겠다던 다산콜센터와 '카트', '송곳' 등 수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졌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대형마트 직원들, 영문도 모른 채 암에 걸려 쓰러졌던 삼성반도체 직원들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담담한 표정과 어투에 실려 관객의 가슴에 사실적으로 새겨진다. 영화는 단 하나의 이야기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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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가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과거와 현재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절규일 것이다. 조용하고 일상적인 절규는 마음을 파고들기엔 더 좋은 법이다. 출연자들과 감독은 누누이 말한다. 우리의 자손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삶을 살 뿐이라고.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낳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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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에는 대학을 못 간 사람들은 공부를 못 해서 못 간 줄 알았다. 강에서 조개를 잡아 팔던 외할아버지의 딸들이었던 나의 엄마와 8명의 이모 중 단 한 명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생각을 뒤집기 위해 10년의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저 생각의 근간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비정규의 사회는 노오력이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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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특히나 가슴에 박히던 말들이 있었다. 감정노동을 넘어 미모노동을 한다던 승무원의 말과 시위의 구호로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어요'라고 외쳤다던 여공의 이야기. 가장 영화를 잘 표현해줬던 한진중공업 김진숙 씨의 인터뷰를 복기하며 글을 마친다.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
나한테는 내 삶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아니었어요. 내가 선택해서 감옥을 간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대공분실을 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크레인에서 내려가면 뭐가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목욕을 제일 하고 싶고. 그다음에는 그냥 내가 선택해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나는... 그냥 이 것도 삶이라고 생각해요. 다 각자의 삶이 있었듯이. 그냥 내 삶은 이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삶을 내가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나는 내 삶을 후회하지 않아요.
급소에서 1센티 차이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간이 있는 거니까. 십 초 차이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간이 있는 거예요. 내가 죽었으면 저 사람은 살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그 삶의 무게가... 지구 한 덩이보다 더 무거워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