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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Apr 02. 2017

선택할 수 없는 삶에 대하여-영화 '위로공단'

야매로 쓰는 영화감상기 2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위로공단'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어쩌면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에게 바치는 노동의 노래다. 지독한 삶에 대한 은유이며 현실에 대한 잔혹한 고증이다. 머나먼 70년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 고증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머니저는마른땅에서피어나고싶지가않아요나도마른땅에서너를낳고싶지않구나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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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로 공단'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던 평화시장에서부터 한진중공업과 기륭전자의 고공투쟁, 하늘 위에서 네 배의 피로를 견디며 살아가는 승무원과 타국에서 한국의 70년대를 재현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여공들과 이주노동자, 낭랑한 목소리로 세상을 열어주겠다던 다산콜센터와 '카트', '송곳' 등 수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졌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대형마트 직원들, 영문도 모른 채 암에 걸려 쓰러졌던 삼성반도체 직원들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담담한 표정과 어투에 실려 관객의 가슴에 사실적으로 새겨진다. 영화는 단 하나의 이야기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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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가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과거와 현재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절규일 것이다. 조용하고 일상적인 절규는 마음을 파고들기엔 더 좋은 법이다. 출연자들과 감독은 누누이 말한다. 우리의 자손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삶을 살 뿐이라고.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낳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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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에는 대학을 못 간 사람들은 공부를 못 해서 못 간 줄 알았다. 강에서 조개를 잡아 팔던 외할아버지의 딸들이었던 나의 엄마와 8명의 이모 중 단 한 명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생각을 뒤집기 위해 10년의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저 생각의 근간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비정규의 사회는 노오력이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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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특히나 가슴에 박히던 말들이 있었다. 감정노동을 넘어 미모노동을 한다던 승무원의 말과 시위의 구호로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어요'라고 외쳤다던 여공의 이야기. 가장 영화를 잘 표현해줬던 한진중공업 김진숙 씨의 인터뷰를 복기하며 글을 마친다.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

나한테는 내 삶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아니었어요. 내가 선택해서 감옥을 간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대공분실을 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크레인에서 내려가면 뭐가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목욕을 제일 하고 싶고. 그다음에는 그냥 내가 선택해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나는... 그냥 이 것도 삶이라고 생각해요. 다 각자의 삶이 있었듯이. 그냥 내 삶은 이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삶을 내가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나는 내 삶을 후회하지 않아요.

급소에서 1센티 차이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간이 있는 거니까. 십 초 차이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간이 있는 거예요. 내가 죽었으면 저 사람은 살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그 삶의 무게가... 지구 한 덩이보다 더 무거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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