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아"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음식을 해주시며 물어보시곤 했다.
"어때?"
"먹을 만 해 엄마", "나쁘지 않아"
"먹을만하다니.. 맛이 없는 거야?
"아니 엄마 맛있어. 그래서 먹을 만 해라고 한 거야~"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지 먹을 만 해, 나쁘지 않아가 뭐니!"
생각해 보니 "맛있다"와 "먹을 만 해"를 같은 의미로 보고 한 얘기였던 것 같다. 참 못난 자식이었다. 그냥 표현하면 될 것을.
사회에 나와서 나와 같은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는 나와 같은 이유로, 어떤 이는 전략적인 이유로, 우리는 같은 듯 다른 이 말을 참 많이 쓰는 것 같다.
나는 패션업계에서 직장생활을 해왔고 지금은 패션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 주관적이며 감성적 표현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특히나 위와 같은 언어의 차이를 느낄 때가 많았다. 절대라고는 표현 못하지만 전략적인 이유로 표현을 했었던 적이 많았다.
"이 정도면 깔끔하게 봉제되었네요. 나쁘지 않네요."
"컬러가 나쁘지 않은데요?"
자주 쓰는 말이었다.
의미로 보자면
"봉제가 깔끔하게 이쁘게 되었네요."
"컬러가 잘 나왔는데요."
같은 의미이지만 표현을 하는 방식은 달랐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표현 방법을 달리 했었던 것 같다.
"이게 뭐가 깔끔합니까."
"컬러가 잘 나온 거 같다고요?"
이런 얘기를 듣지는 않을까 하는 일종의 방패막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의미지만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방법이 자연스레 달라졌던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세분화된 일을 하는 곳이 직장일 것이다. 하는 일과 나이 그리고 연차에 따라 직급과 직책이 존재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생각과 표현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도 신경써야 한다. 소위 말하는 갑을 관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오죽할까. 이러한 사회에서 어쩌면 "좋아" 라는 표현보다 "나쁘지 않아"라는 표현이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라면 부정어가 아닌 긍정어를 쓰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샌가 상황에 맞게 표현방법을 달리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표현의 언어가 아닌 상황의 언어를 구사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