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객님이라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부모가 동반해도 입장이 불가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개봉하면 입장할 때와 티켓을 구매할 때 진행하는 절차들을 좀 더 세심하게 보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도 많은지라 입장 전에 티켓 확인이 중요하다.
사무실에 있는데 현장에서 무전기로 호출이 왔다.
내용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데 부모님이랑 같이 왔다. 부모님이 내가 책임질 테니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고, 현장 스텝은 규정 상 입장이 안된다'고 하여 약간의 소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영화는 중국 영화였는데 무협 요소와 궁중 암투를 담아내면서 사실적인 묘사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였다. 나도 본 영화라 내용은 알고 있었다. 빨간 피와 암투, 그리고 대규모 전투신이 묘사되는 과정에서 잔인한 요소가 많았다.
현장에 도착하니 부모님께서는 약간 화가 나신 듯했다.
"보호자가 동반되고 아주 잔인한 영화도 아닌 중국 무협영화인데 왜 입장이 안 되는 것이냐. 내 아이는 이 정도의 영화는 볼 정도로 컸다."
입장을 못하는 그 학생은 고등학생으로 보였고 아마도 저학년이 아닐까 할 정도로 앳된 학생이었다. 규정도 입장 불가였지만 아버님이 생각보다 완고하셨다.
"내가 책임지고 영화 보겠다는데 왜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겁니까?"
"고객님 물론 고객님 말씀처럼 부모로서 책임을 지신다는 말씀 알겠지만 현재 규정 상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부모님이 동반하셔도 입장이 법적으로 제한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나도 정석적인 매뉴얼대로 응대했다. 법으로 안된다고 정해져 있는데 우리가 더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아버님께서도 완강하셨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영화 보러 왔고 내가 봤을 때 이 영화는 우리 아이가 보기에 그리 잔인한 영화도 아니다. 충분히 볼 수 있으니 들여보내 달라. 모든 건 내가 책임지겠다.' 라는 말씀으로 쉽게 돌아갈 의사가 없음을 표현하셨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얘기를 들어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매뉴얼만 얘기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아버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자제분을 믿고 또한 이제 다 커서 부모와 같이 영화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충분히 아버님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저도 이 영화를 봤습니다. 아버님 말씀처럼 무협을 소재로 한 영화고 화려한 액션씬도 있고 재미있는 영화는 맞습니다. 하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서 그런지 확실히 잔인한 묘사가 많고 다소 충격적인 장면도 있습니다. 성인인 제가 봐도 그런 부분에서는 왜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인지 충분히 이해될 정도의 장면이었습니다."
"아버님의 입장 충분히 공감되지만 제가 만약 아버님이고 제 자식이랑 이 영화를 같이 본다면 분명 보고 나서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식적인 규정으로의 접근보다는 공감을 하면서 얘기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마침 그 고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보기에 그냥 무협영화가 아니고 잔인한 게 많이 나오던가요? 아이가 보기에 안 좋을 만큼?"
이라고 물어보셨고
"네 그런 장면들이 분명 많이 나왔습니다. 저라면 아이와 같이 안본게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오붓하게 영화 보러 오셨는데 오신 만큼 같이 보실 수 있는 영화를 제가 추천해 드리는 것은 어떨는지요?
나는 항상 손에 쥐고 다니는 영화 순서표를 보며 다른 영화를 권해드렸고 그 고객님은 권해드린 영화를 선택하셨다. 절차 상의 불편함이 없게끔 티켓팅을 도와드렸고 그 가족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는 순간까지 함께 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에 일하는 보람을 느꼈다. 무엇보다 신입의 입장이지만 누군가에게 공감을 하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약간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다.
배움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신입사원 연수 때 들었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얘기를 들어라"가 이렇게 큰 영향을 가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