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을 삼가기를 항상 처음처럼 하십시오."
조선시대 한명회가 죽기 전에 성종에게 남긴 유언이다.
전문으로 보면
"처음에 부지런하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게을러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원컨대 나중을 삼가기를 항상 처음처럼 하십시오."
신봉승 작가의 소설 "한명회"에서 처음 접하고 항상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글귀이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입사 후 포부로 위의 글을 적어서 냈었다. 예나 지금이나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가 보다. 몇백 년 전에도 초심 지키기는 매우 어렸웠다는 내용이니 말이다.
초심의 가장 큰 적은 익숙함이 아닐까?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니 조금씩 스스로에게 관대해진다. 경험이 쌓여 오늘 할 일을 내일 오전까지 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내일 오전에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내가 그랬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 할 일만 하면 되니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육체적인 여유도 생길 것이다. 그 여유가 나태함으로 변하면 안 된다.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엄격하게 일을 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일이 없더라도 일찍 사무실에 나와서 하루를 시작하고 정한 시간까지는 일을 했다. 다음을 위한 자료를 만든다거나 만나야 할 사람들에게 연락도 돌리면서 하루의 일들을 만들어 나갔다. 바쁠 때는 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어느 순간 업무공백의 텀이 생기고 조금씩 마음이 무뎌져 가면서 시간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타이핑이 느려지고 할 일은 열어만 두고 쓸데없는 검색시간이 늘어났다. 긴장의 끈을 아주 조금씩 놓다 보면 내가 얼마나 무뎌지고 있는가를 모르게 된다. 1분의 무뎌짐은 결국 하루, 그리고 일주일의 정체로 나타났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자료가 미완성 상태였다.
그 자료는 개인사업자에게는 몇백, 아니 몇천의 수익 발생을 놓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무뎌지는 익숙함에 하나의 계약을 놓치게 된 것이다.
준비가 미흡했던 나태함은 생각 못하고 계약을 놓쳤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눈에 들어오는 책이 예전에 읽던 "한명회"였고 그 글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계약을 놓친 건 나의 나태함이었고, 그 나태함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짧은 문구였지만 내 생활에 큰 영향을 준 그 말처럼 "처음에는 부지런했지만 나중에 갈수록 게을러졌던 것"이다.
다시 알람을 이른 시간에 맞추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오늘 한일과 내일 할 일들을 적고 나에게 말했다.
"게을러지지 말자. 끝에 이르는 모든 일을 처음의 마음으로 시작하자."
시즌으로 움직이는 업종이라 꾸준히 오더를 계약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열심히 준비해야 그다음 시즌의 오더를 계약할 수 있다.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계약이 성사되면 그 일들을 처리함과 동시에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시장조사와 원부자재의 개발 등이 모여 다음 시즌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다. 준비를 하는 과정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자칫 오늘이 아닌 내일 해도 된다라는 익숙함과 나태함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계약해야 할 다음날에 일이 완료된다. 그 일은 완료가 아닌 계약 실패이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을 한다.
"끝 보기를 처음과 같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