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점 안 보기"

by Ryan
"별 다섯 개 만점에 O개"


지금처럼 인터넷이 바로 옆에 있기 전,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영화잡지를 많이 봤다. 한 달에 한번 정기 간행물로 나오는 잡지에는 좋아하는 배우 소식, 영화제 소식, 그리고 영화에 대한 각종 리뷰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 전문가, 평론가들의 별점은 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였고 별점이 높을 경우 보지 않아도 이미 재미있는 영화가 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각종 리뷰와 영화를 손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개봉작이 비디오 가게에 들어오는 날이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정보를 입수해서 가게로 달려가곤 했다. 인기작은 대여가 많이 되었던지라 한 개가 아니고 그 이상의 테이프가 진열되었고 최신 순으로 가장 좋은 위치에 꽂혀 있었다. 대여점 가게 사장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시절 사장님께서는 서비스로 조금은 시간이 흐른 영화나 인기 없는 영화를 같이 대여해 주시곤 했다. 일종의 단골고객에게만 주어지는 서비스 혜택이라고 해야 할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개봉작을 봤다. 영화잡지에서 평점이 매우 좋았고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 광고도 많이 했던 영화였다. 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랑 안 맞는 것이었을까.. 난 별점만큼의 감동과 재미는 없었다. 물론 학생이었고 어린 나이인지라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 같이 대여받은 영화는 홍콩 무협영화였는데 내 기억으로는 리뷰도 거의 못 봤고 있어도 별점이 그리 높지 않던 영화였다. 그 당시 유행했던 날아다니고 굳이 힘들게 초식을 외치며 싸웠던 흔한 무협 영화인 줄 알았다.


다 보고 났을 때 그 아련함, 주인공이 떠나가고 남아있는 여주인공의 슬픈 눈망울, 비록 와이어가 보일지언정 왠지 그 시대에는 정말 날아다녔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액션의 현란함, 끝나고 귓속에 맴돌던 음악까지.. 어느 하나 나쁜 것이 없었다. 이 영화를 서비스로 대여해주신 사장님께 "영화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재미있게 봤다.


내가 액션을 좋아하긴 했다. 그 당시 무협영화를 안 좋아하던 내 또래가 얼마나 있었을까? 그런데 액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음악과 전개과정도 너무 좋았다. 말 그대로 정말 재미있게 본 것이다. 그 일로부터 시작이었을까? 어느 순간 별점을 잘 안 보게 됐다. 별점이 어떻게 보면 선택의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좋은 지표지만 '보기도 전에 이럴 것이다'라는 차별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이후로도 영화잡지를 꾸준히 구독했지만 별점에는 크게 신경 안 썼다. 영화는 보고 나서 감정대로 느껴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별점을 안 보게 됐다.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더 이상 영화잡지를 보지 않게 됐고 댓글이나 영화 정보란을 통해 영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별점과 평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히 개개인의 생각이고 느끼는 감정을 글로 쓰기 때문에 절대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참고를 할 뿐 내 선택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르니까.


영화뿐만 아니라 일상 전반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집과 아집이 될 수도 있기에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타인의 잣대를 참고하지만 내 기준을 크게 흔들리게 만들지도 않는다.

'고집이 세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 스스로 고집이 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나만의 기준을 강하게 가져가는 성향이 그리 보였던 듯하다. 그래서 요즘엔 '응 나 고집 센 거 같아'라고 말한다.


어디까지나 평점과 별점은 참조용일 뿐 절대적인 게 아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같이 정보가 과다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좋은 평점과 별점은 분명 선택에 도움이 된다. 선택과 차별의 시작점이기도 하겠다. 난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내가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타인에게 그 내용을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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