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Lie"
"선의의 거짓말"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항상 정직하고 바른 생각으로 말을 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며 말이다. 이른바 사회생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학교를 들어가면서 불가능을 깨닫게 됐다. 솔직하게 말하면 거짓말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있었다. 가장 흔한 건 역시 공부 즉 숙제, 성적(나의 학창 시절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순위가 있었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지만 공부만큼 노는 것도 좋아했고 지금처럼 스마트한 기기가 없던 시절이라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구분이 명확했다. 놀려면 일단 나가야 했기 때문에 공부와 노는 것의 구분이 정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하던 거짓말들은 선한 거짓말들이 많았다.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기보단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회피 능력의 발현이랄까. 아마 부모님은 다 알고 계셨으리라. 이불 킥 할 만큼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의 향연이었다.
사회에 나와보니 세상은 "White Lie", 선의의 거짓말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었다. 대인관계에 있어 수많은 선의의 거짓말이 오고 갔다. 어렸을 적 선의의 거짓말은 부모님이 다 알고 계셨다면 사회에서의 그것은 서로가 알고 있으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상사와의 관계를 위해, 협력사와의 관계를 위해, 그리고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보이지만 굳이 드러낼 필요 없는 그리고 그것을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선의의 거짓말들이 필요했다.
거짓말이라는 시전적 의미를 제외하면 선의의 거짓말은 일종의 쿠션 용어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주고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그런 언어 말이다. 정중한 거절을 할 때도 쓰기 좋다. 부탁만큼 부담스러운 거절이 있다. 그럴 땐 이렇게 좋은 말이 없다. 피해를 주지 않고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그런 말을 위해 종종 쓰는 표현들이 있다.
"아~ 오늘 선약이 있습니다. 꼭 만나고 싶었는데 하필 오늘 약속이 겹치네요..."
"약속 없을 땐 그렇게 없더니 또 겹칠 땐 이렇게 겹치네요."
정말 그럴 때도 많다. 일주일 내내 약속 없다가 갑자기 몰려드는 약속에 고민해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답의 속도다. 머뭇거리거나 부정확한 말은 상대방에게 의도적인 회피로 보일 수 있고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 위한 머뭇거림이 오히려 상대방에게는 오해의 거짓말로 들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선의든 악의든 뒤에 거짓말이 붙는 건 사실과 반대되는 얘기나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만사에 OK를 할 수만 있다면 거짓말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아서, 지금이 아닌 나중의 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된다.
우리 셋은 친구였다. 두 친구가 다퉜다. 한 친구가 나한테 전화가 왔다.
"다툼을 한 친구가 전화를 안 받는다. 화해를 하든 인연을 끊든 통화를 해서 만나야겠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혹시 너한테는 전화가 왔어?
사실 전화를 안 받던 그 친구가 나한테 전화를 했었다. 둘이 싸운 이유와 지금은 그 친구와 통화를 하기 힘든 이유를 말해줬고 나에게는 당부를 했다. 전화 왔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너도 연락이 안 된다고 얘기해달라고.
"예전에 통화한 거 말고는 전화 온 적 없었어. 그때 이런저런 일로 힘들다고는 했는데 혹시 그 일 때문에 너랑 다툼이 있었던 거야?
둘 다 나한테 소중한 친구였다. 어느 한 친구의 부탁들 들어주자니 다른 한 친구에게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양쪽의 얘기를 들어봤을 때 시간이 조금 필요한 일이었고 둘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 뒤로 당부를 했던 친구에게도 전화가 왔었다. 난 양 쪽 모두에게 전화가 안 왔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화를 기다리는 친구에게는 사유가 있으니 기다리면 좋겠고 전화를 안 받는 친구에게는 지금은 아니겠지만 필요한 시간만큼 일이 해결되면 꼭 먼저 전화하라고'
어찌 보면 별 일 아닌 것 같겠지만 그 순간의 나에겐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던 시간이었고 내 생각에 둘을 위한 것은 이것이라 생각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개인적인 핑계와 정중한 거절을 위한 거짓말이 아닌 대인 관계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오래된 친구였기에 내가 말하는 게 정말 사실일까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던 내가 양쪽 모두에게 전화를 안 받았을 리 없다고 서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나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술 한잔 비우며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때 친구 둘에게 얘기했다. 난 너희들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두 친구도 얘기하더라. 알고 있었다고...
자주 쓰면 습관이 되고 선의가 악의로 변질될 수도 있는 것이 거짓말이다. 중요한 건 선의의 거짓말에는 절대 악의가 있으면 안 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관계 유지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간이 흔들리면 말이 흔들리고 말이 흔들리면 선의가 악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