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꼭 말해야 알아?
가끔 집에 오면 어머니가 언뜻 보아도 서운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실 때가 있다. 그간의 경험상 아버지 또는 누나에게 생긴 서운함이다. 서운함의 주제는 한결같다. "꼭 그걸 말을 해야 아나?"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나의 대답도 크게 바뀌진 않는다.
"아버지나 누나한테 어머니가 원하는 것에 대해 정확히 말을 했어요?"
"어머니가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상대방은 모를 수 있어요."
"그럴 땐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얘기하세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해본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내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또한 "꼭 그걸 말해야 아나?"라고 상대방에게 원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족을 제외한 타인에게는 나 또한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름 타인을 배려를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 생각의 연장선에 결정장애도 있는 것 같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잘못 이해했다면 정확한 뜻을 전달하지 못한 나의 잘못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제 말을 하기 전 여러 생각의 갈래를 만든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 생각만 얘기하면 이기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SNS 답글이나 메신저 댓글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이 그 방증일 것이다. 사고의 흐름이 결정을 못 내릴 때 선택한 것은 우회적 표현이었다. 직접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듣겠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목적지 빼고 모든 곳을 다 돌아볼 기세다.
특히 감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출구로 나가지 못해 부산까지 갈 듯이 얘기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난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그 뜻을 잘 몰라.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듣지 못하는 데 내가 어떻게 너에게 답을 해줄 수 있겠어."
나의 배려는 눈치로 변해버렸고 그 눈치는 친구에게 알아서 답해줘라는 질문 없는 문제지가 되어 버렸다.
배려 없이 이기적인 생각으로 말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위하는 배려와 미루는 배려를 구분하고자 함이다. 감정을 나누는 얘기에 물론 필터가 아예 없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필터는 방수가 될 수도 있다. 요즘에는 정확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소하게는 약속을 정할 때, 약속을 거절할 때 , 질문이나 답을 할 때 의사표현을 확실히 한다.
"난 오늘 특별한 약속은 없고 놀고는 싶어. 그런데 술은 많이 먹고 싶지는 않은데 딱히 다른 거 뭐할지는 모르겠어"
예전에 친구가 오늘 저녁때 뭐해?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알았어 일단 OO로 나오고 오늘 OO 하자"
내가 원하는 대답은 이거였다. 말을 안 해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이 메시지를 다시 봤는데 내가 봐도 나를 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