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말씀드렸잖아요"

by Ryan
"그때 말씀드렸잖아요"


서로의 기억이 혼탁할 때 이 말 한마디에 상황이 정리될 때가 있다. 물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인정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전투준비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속에서 모든 업무를 mail과 sns로 진행할 수는 없다. 아직도 여러 이유로 통화가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컨펌 서류가 오고 가는 일이 아닌 경우에 구두로 전달되는 업무가 많다. 통화 중 결정되는 일들이 많을 경우 바로 처리를 하거나 이후에 메모를 하지 않는다면 자칫 일을 까먹거나 놓칠 수 있다. 그리고 서로가 말하는 내용과 이해가 달라 자칫 다른 결론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A : "단가는 작년하고 같은 건가요?
B : "원재료 가격이 올라서 작년 그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A : "이번 건은 전체 원가 때문에라도 가격이 오르면 안 되는데요..."
B : "현지에서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A : "네 그럼 확인 꼭 부탁드립니다. 이거 가격 동일하게 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사람과 공급받는 자 사이에 꾸준히 나오는 대화다. 여기까지는 회신과 확정이 되면 큰 문제가 없겠다.


그런데 납기가 급할 경우, 해외로 원부자재가 급히 나가야 할 경우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다. 일처리가 급해져 당장 급한일부터 처리하게 된다. 서로가 급하니 先 처리 後 공유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제 아이템을 납품한 사람이 생기고 받은 사람이 생기니 결제 과정이 남는다.


A : "그때 이거 단가가 동결되어야 한다고 했던 거 아닌가요?
B : "원재료 가격이 올라서 그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A : "다시 한번 확인하신다고 하셔서 저는 단가가 동결된 줄 알았습니다... 그때 말씀드렸잖아요..."
B : "저도 그때 말씀드렸었는데요...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서로 받아들이는 대화가 달랐다.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서로 확인 못했고 그리고 받아들이는 게 달랐으니 서로의 말대로 확정됐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그때 말씀드렸잖아요"라는 의미를 서로 알게 됐다. 남은 건 처리다. 해결하는 것은 회사 대 회사로 처리가 될 것이다. 원만히 해결될 수도 있고 첨예하게 싸울 수도 있겠다. 잘잘못을 가릴 것이고 따질 수도 있다.


같은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해도 받아들이는 상대방에 따라 그 내용은 확연히 달라진다. 말은 생각의 전달체이다. 말보다 생각이 먼저 앞설 때 우리는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착각한다. 생각은 주어 서술어 목적 어였겠으나 말은 목적어만 말할 때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듣는 그대로의 말만 기억한다. 대화가 길어지고 말한 사유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듣는 그대로의 말만 기억하는 자와 모든 내용을 전달했다고 생각하는 자만 남게 되는 것이다. 대화가 아니더라도 문자나 SNS에서도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내용이 구구절절하거나 명확하게 설명하기 애매한 상황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날 것의 문자가 온다면 보는 사람은 그 글자의 의미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A :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 (PM 02:00)
B : "일 끝나면 7시 넘을 듯"(PM 02:05)
A : "저녁 괜찮다는 거임?" (PM 05:30)
B : "나는 괜찮다고 말한 건데?" (PM 05:35)


B는 나다. 내가 말한 것은 "난 일이 끝나면 7시 조금 넘을 것 같은데 그러면 7시 30분 전 후가 될 듯하다. 그때 먹어도 괜찮은 거지? 나는 오늘 너와 저녁 먹는 것 좋다."의 의미였다. 너무 축약한 것인가... 당연히 상대방은 다시 물어본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 건데"에는 "아까 얘기했잖아 나는 너와의 저녁 약속을 가겠다고"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상대방은 일 끝나면 7시 넘으니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뭔가 문자나 SNS에 간단명료하게 보낸 다는 것이 머릿속 생각은 그대로 두고 혼란스러운 단어만 남기게 된 것이다.


B : "좋아 그런데 일 끝나면 7시 넘을 거 같아 7시 30분쯤 괜찮아?"(PM 02:05)


라고 얘기하면 끝났을 얘기였다. 정확한 대답은 머릿속에만 두고 간단하게만 보낸 것이다. 지인과의 관계에서는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업무적인 상황에서는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잘못 축약해서 보낼 경우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때 말씀드렸잖아요"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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