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거절한다
거절을 잘 못한다. 거절을 못하는 이유는 내가 거절해야 하는 이유보다 상대방이 느낄 감정을 더 생각해서다. 그래서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느냐 그것도 아니다. 거절을 하기 위해 말이 많아진다. 애매모호한 표현을 하고 부탁 자체를 회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거절을 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게 느낄 감정이 서운함이 될까 봐 두려워서다. 100억을 빌려줘 처럼 나에게 불가능한 것은 거절이 가능하다. 아니 그런 부탁은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참으로 애매한 부탁들이 있다.
"할 수는 있으나 그리 내키지 않는"
"해봤던 것이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그런 부탁들 말이다. 나름 강단 있고 맺고 끊음을 잘한다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건 부탁이 아닌 업무나 가부의 결정이 바로 될 수 있는 일에 국한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변의 머뭇거림과 Yes or No를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답변의 머뭇거림과 Yes or No, 두 가지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인과관계가 되기도 한다. 위의 내용처럼 할 수는 있으나 그리 내키지 않는 부탁과 해봤던 것이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부탁받으면 "그 일?", "아~"처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말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아~맞다"와 같이 긍정과 동조의 말이 아닌 탄식에 가까운 "아~"말이다. 그리고 부연설명이 들어간다. 다 알고 있지만 괜히 한번 더 물어보게 된다. 이 짧은 시간(상대방이 보기에 짧지 않을 수 있다)에 이제 상대방의 부탁하는 사유와 정도를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느낄 감정을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제 Yes 대신 Not so bad로 마무리하는 시간이 온다. 다음 차순은 "내키지 않으면"이라는 말이 될 것이고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알았어 내가 한번 해볼게"라는 나의 끝맺음으로 대화가 종료된다. 대화가 종료되었을 때의 그 찜찜함...
"처음부터 한다 할걸"
"처음부터 거절할걸"
"부탁 들어줘도 서운해하는 거 아닌가?"
라는 후회 3종 세트가 밀려온다. Can과 Can't로 빨리 끝냈어야 했다. 오히려 더 서운한 결과를 만든 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찝찝함만 추가된 것 아닌가!
머뭇거림이 상대방에게 "혹시 들어주기 싫은 건가?" "귀찮은 건가?"라는 생각을 할 시간을 준 것일 것이다.
그 머뭇거림이 Yes or No를 할 타이밍을 놓치게 했고 나에겐 찝찝함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다.
결정이 빠른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부탁을 받았을 때 상대방을 생각하지 말고 너를 먼저 생각해 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하지 마. 대신 그 결정이 명확해야 해. 상대방이 너에게 원하는 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지 네가 상대방의 마음 헤아려 주는 걸 원하는 게 아니거든"
진정 상대방이 원하는 게 뭐였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걸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난 부탁을 거절해서 상대방이 나에게 느끼는 실망이 더 싫었던 것이다. 중요한 목적과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으니 해결하거나 덜어내야 할 일에 감정적인 서운함만 더했던 것이다.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요즘 많이 노력 중이다. 할 수 있고 해주고 싶은 일이라면 바로 움직인다. 그리고 내키지 않은 일이나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들어온 부탁은 거절한다. "싫어"가 아닌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내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얘기한다.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서운해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 생각으로 말을 하면 상대방도 다 알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