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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숭이같은비버 Aug 07. 2024

5-2. [외노자 회고록] 런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다

새로운 직장생활 시작과 빠른 손절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전에 오퍼를 받았던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때는 내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름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고생한 것은 잊고 잘해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런던에 떨어진 회사에 대한 아쉬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


회사는 신축 건물에 있었고 시설이 너무 좋았다. 복지도 좋았다. 회사 사람들의 나이대도 비슷하고 재밌고 대학교 같은 느낌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말이 스타트업이지 그냥 편한 직장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불만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갖춰진 것이 없는데, 업무 속도도 느리고 이미 정체한 느낌에 팀 구성도 좋지 않아서 뭐 하겠다는 건지 의문스럽고 황당한 느낌이었다. 이걸 첫 주에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아찔하지만, 당시엔 내 상황 상 최선의 선택으로 이 회사에 온 것이니 후회할 것은 없고, 예상이랑 너무 다른 부분에 대해서 내가 빠르게 선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이 얘기를 하면 보통 내가 이때 한국 회사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난 이 당시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최선의 판단으로 퇴사한 것이다. 다만, 런던에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준 사장님께 미안하고, 한 달 만에 그만두면서 조직 분위기를 흐린 게 아닌지 미안했다. 퇴사에 대해서 망설임이 없었던 이유는 첫째로 하루하루가 너무 낭비 같았다. 둘째는 한국에 취업하자면 어디든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외국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 당시에 사실 런던에 회사와 연결이 됐었다. 재취업까지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셋째는 회사를 다니면서 면접 준비하고 공부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넷째는 대학원을 아직 졸업을 못했어서 혹시 공백기 얘기가 나오면 학교를 마무리했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일 때문인지, 그동안의 경험 때문인지, 선택을 할 때, 내 비전, 내 가치, 장단점 비교 등은 당연한 것이고, 테일 리스크 시나리오를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스스로 다독이고 반문하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 그래서 버티는 힘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는 퇴사하고 2주 후에 말했는데 생각 외로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셔서 무난하게 넘어갔다. 백수 생활은 내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공부를 하긴 했지만 난 여전히 매우 게을렀다. 그래서 생각한 것만큼 해내지 못했다. 퇴보하진 않았지만, 유의미한 진전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막연히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안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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