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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숭이같은비버 Aug 03. 2024

5-1. [외노자 회고록] 런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다

갑작스러우면서도 계획되었던 귀국

그렇게 난 한국으로 가야만 했다. 이게 예상 시나리오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단기 렌트 계약만 했고, 짐을 최소화했다. 나의 모든 소유물은 캐리어 두 개에 들어갔다. 한국 스타트업에 오퍼를 받은 상태였다. 아무도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작지만 날 전적으로 믿어주는 조직으로 가서 스스로 증명하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주 초기 스타트업은 아니라서 꽤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약속받았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 3주간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런던을 떠나기로 한 전날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지원했던 수 백 개의 회사 중 한 군데서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볼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정말 유명한 회사였다. 내가 있는 업계에서 교과서에 나오는 회사였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여러 면접에서 무의미한 칭찬에 지쳤고 더 이상 상처받고 희망 고문 당하기 싫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한 시점이었다. 인사 팀장한테 나는 영국을 내일 출국해 3주간 유럽 여행을 할 것이고, 한국에 이미 오퍼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면접진행이 괜찮다면 추후에 연락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첫 주는 네덜란드에 있었다. 인사 팀장이 채용하는 팀에서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다음 여행지인 파리에 도착하는 날에 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대학교 친구를 만나면서 이 회사 얘기를 했는데 합격 가능성은 1%고 99%의 확률로 한국에 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파리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했고, 실수로 잠이 들어 면접관의 전화가 내 알람이 되었다. 채용 포지션의 보스였다. 독일 엑센트를 가지고 있었고 내 이력서를 기반으로 한 기본적인 질문을 했다. 거의 바로 다음날 팀원 전원과의 면접이 잡혔다. 파리 숙소 방구석에서 나는 몇 시간에 걸쳐 면접을 봤고 무난하게 봤지만 이때도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처음 와보는 파리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더럽다 해서 걱정했는데 런던보다 깨끗한 느낌이었다. 박물관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너무 멋졌고 크로와상과 커피, 프렌치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마지막 여행지는 아테네였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후에 또 몇 명이랑 얘기를 하고 인사 팀장이랑 또 전화를 했다. 이때도 내 우선순위는 여행이어서 아크로폴리스 근처에서 인사 팀장의 전화를 받았는데 신호가 잘 안 터져서 전화가 계속 끊겼고, 결국 산에서 내려와서 전화를 이어갔다. 근데 이때부터 합격 가능성을 생각했던 것 같다. 회사의 보수구조, 복지 등을 자세하게 거의 한 시간을 설명했고 내가 관심 있을 만한 새로운 팀도 있으니 런던에 다시 오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아테네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는 환불이 안 됐지만 그만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예상 밖으로 다시 런던행 비행기에 탔다. 이때 네덜란드에 있던 대학교 친구와 얘기하며 내 마음속으로는 합격 확률이 높다 생각하긴 했지만 50/50 확률이라 말했고 괜히 들떠서 상처 받기는 싫었다. 여행하기 위해 옷 대부분은 이미 따로 부쳤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면접에 적합한 옷을 몇 개 구매했다. 그리고 면접 시간 몇 시간 전에 회사 근처 카페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면접 시간이 되어 회사에 도착했다. 저층 건물 전부가 이 회사 건물이었는데 인테리어 굉장히 멋있었다. 건물 곳곳엔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와 스낵이 구비되어 있었다. 이날 인사 팀장은 휴가여서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인사 팀원과 얘기를 먼저 나눴다. 채용 확정은 아니나 비자 발급 문제상 일단 런던에 더 체류하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갑자기 새로운 팀의 팀장과 얘기를 나눠보라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무난하게 진행됐고 거의 채용이 확정된 마냥 얘기했다. 오면 자기가 이런저런 것을 알려줄 것이며 어떤 노트북을 받게 될지 등의 얘기였다. 그리고 원래 이야기를 나누던 팀의 팀장과도 얘기했다. 테크니컬 한 질문을 몇 개 물어보긴 했는데 무난하게 대답했고, 이후엔 왜 내가 런던 오피스에 적합한지 오히려 설득하려 했다.


마지막엔 임원 두 분과 면접이 남았다. 팀장은 형식적인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면접은 무난했고 임원은 회사의 여러 팀 중 어느 팀에 관심 있냐고 했다. 나는 원래 공고가 나온 팀을 선호한다고 했고 나머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면접이 끝났고, 난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채용을 안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상반된 리뷰를 받았으며, 내 동기부여가 충분히 있지 않아 보인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화도 났다. 50/50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날 방어하려는 모습이 수동적으로 보였나 잠시 생각했다. 결국 다 의미 없는 것이었다. 화도 나고 눈물도 좀 났다. 바로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렇게 진짜로 한국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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