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숭이같은비버 Aug 03. 2024

4-4. [외노자 회고록] 런던에서 첫 직장생활

이직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

런던 생활의 근원적인 불만은 회사 때문이었다. 점차 생활도 버거웠기도 했고,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회사를 다니기 위해 버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 실제 상황은 시한폭탄과 같이 불안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내가 합류하는 팀은 코로나로 인해 비즈니스가 꽤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원래는 팀을 확장할 계획으로 나를 채용한 것인데 비즈니스는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약 6개월 후 그나마 실무를 잘했던 매니저가 퇴사를 했다. 팀의 사기는 매우 낮았고 팀의 업무 진행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느렸다. 도대체 다들 놀기만 하나 의문스러웠다. 입사한 지 9개월이 지난 시점인가에 나는 보스와 면담을 요청했다. 보스한테 내가 힘든 점들을 솔직하게 말했고 (대부분 이미 말했던 점들이긴 했지만) 내가 기여하고 증명한 부분에 대한 합당한 보상으로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 보스는 내가 힘든 부분에 미안하다고 했지만, 자기도 나에 대한 로열티를 지키려고 채용을 취소하지 않았고, 회사 C레벨에서 나를 고용한 것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래서 팀 사정 상 연봉 인상은 불가능하고 팀을 축소하면서 내가 시드니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원래는 싱가폴을 알아봤지만, 현시점 비자 발급이 어렵다고 말했다. 내가 경력이 1년도 안되는데도 다른 대륙으로 이동을 지원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남은 렌트 계약기간이 있다면 회사가 지원해 준다고 했다.


놀랍게도 팀장이 말한 내용은 상당 부분 예상한 것이었다. 무능한 보스가 원망스럽고 화도 났다. 반대로 고마운 감정도 조금 들긴 했다. 하지만 시드니는 죽어도 가기 싫었다. 일단 시드니에 있는 사람들이 매우 무능하다고 생각했고, 망해가는 팀에 붙어있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또 적응할 생각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난 팀장이 결정을 요구할 때마다 즉답을 피했고 런던 내에서 이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정말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런던에서 적어도 500개의 잡포스팅에 내 이력서를 보냈다. 대부분의 경우엔 그냥 이력서만 보내면 돼서 한국 공채처럼 여러 자기소개서 문항을 공들여 쓰는 수고는 필요 없었다. 그래도 매번 공고를 찾고 무지성으로 이력서를 뿌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또 내 서류합격률은 처참했다. 떨어졌다고 알려주는 곳은 손에 꼽았기에 한 달 정도 기다렸는데 아무 연락이 없다 하면 떨어졌다고 짐작하는 수준이었다. 이력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업계 경력이 긴 분들에게 돈을 내거나 부탁을 해서 첨삭도 받아봤다. 이력서가 충분히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실제로 내 업무 성과는 좋은 편이긴 했다. 그나마 고쳐서 다시 수백 개의 지원을 했지만 서류 합격률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점차 내가 런던에서 이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나는 타겟스쿨을 나오지 않았으며 이를 극복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력이 많이 나아졌고 업계에서 경쟁력이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지만, 타겟스쿨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디스카운트는 훨씬 더 크다고 느꼈다. 우리 팀에서는 퇴사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가 채용을 진행했는데, 실무 테스트를 시키면 다들 너무 수준 이하였다. 면접자 전부가 타겟스쿨에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는데, 면접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그 면접자들의 링크드인을 보면 상당수가 유명 회사에 풀타임으로 고용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부 코로나 보조금으로 계약직으로 잠깐 고용한 친구도 있었는데, 일을 너무 못해서 날 짜증 나게 했었다. 근데 친구마저도 새로운 직장에 풀타임으로 안착했다. 이걸 보고 뭐 별거 없네 나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처음에는 들었지만 점차, 이 이유 때문에 나는 절대 되기 힘들겠구나. 듣보잡 학교를 나온 내가 극복하려면 뭔가 차원이 다른 것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는 서류합격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두 번째는 경력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일 년 내외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면접이 잡히면 면접관이 이제 일 시작했는데 왜 이직을 하려 하냐고 물어봤다. 사실 이때 팀이 망해간다고 말하면 될 것을 지나치게 하소연하면서 안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그래도 난 마지막엔 실력에 꽤 자신이 있었다. 더 이상 기껏해야 한국 공채 면접 경력만 있는 뉴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 번은 영국에서 누구나 알 정도의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기회를 얻었고, 회사에서 준 시험도 내가 자신 있는 실무형 시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접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거 같은데, 그땐 면접관들이 좋게 봐서 지원자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얘기했다. 또 경력에 비해 실력이 아주 좋다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면접관들이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들 출신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아예 없진 않았다. 제발 말만 저렇게 하지 않고 뽑아주길 간절히 기다릴 뿐이었다. 면접을 여러 번 봤는데 실무형 질문부터 이론적 질문까지 난 모두 잘했고 매번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이 회사는 내가 지금까지 해본 전형 중 가장 오래 면접을 봤는데 지원부터 마지막 결과까지 6개월이나 소요됐다. 한번 면접을 보면 한 달이 지나서야 다음 전형을 진행하자고 연락이 오곤 했다. 처음엔 언제 연락오나 기다리다 어느 순간부터는 떨어졌다고 생각이 드는 시점에 연락이 왔던 거 같다. 나중에는 정말 소수만 남았고 채용이 거의 확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또 지루하게 인사팀의 연락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인사팀이 나에게 한 말은 두 명을 채용할 계획인데, 관례상 경력이 더 긴 사람을 먼저 채용하기로 했고 나는 아직 채용 프로세스가 끝난 것이 아니라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 이후 지금 2년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다. 물론 이젠 그 회사에서 연락 와도 갈 생각은 없다. 


사실 불가능은 아니었다. 단 한 군데에서 어떻게 나를 좋게 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결정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상황 상 마냥 버틸 수만은 없었다. 결국 시드니는 정말 가기 싫었고 팀장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보스가 미우면서도 나가는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팀이 비즈니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보너스를 받고 바로 퇴사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름의 노력은 했으나, 객관적으로 팀의 상황을 바꿀 정도로 의미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보스에게 보너스 얘기가 나오기 전에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스는 나에게 퇴사한다는 것을 팀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C레벨에 말해서 보너스를 챙겨주겠다고 얘기했고, 가든리브나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퇴사를 진행시켜 준다고 얘기했다. 그때 나 포함 세명이나 퇴사를 하게 됐는데 유일하게 보너스를 받게 되었고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계약상 최대 금액에 가까운 액수를 받았다. 날 이렇게 생각해 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동시에 내 상황이 너무 슬펐고 짜증났다.

작가의 이전글 4-3. [외노자 회고록] 런던에서 첫 직장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