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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Jun 16. 2022

우리들의 블루스: 동석이는 이제 선아가 아니어도 괜찮아

(스포가능)

 

<우리들의 블루스>에 등장하는 제주도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에서 보면 척박하다. 찬란한 햇살을 받은 푸른 바다가 빛나고, 생선 비린내라고는 나지 않을 듯 깔끔한 어시장엔 활기가 넘친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다 뒤에 깔리는 <Quando Quando Quando>라는 보사노바 곡은 묘하게 어울려, 내가 가본 제주도가 이리도 이국적인 곳이었던가 기억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차승원의 얼굴은, 그림같은 배경이 무색하리만치 현실적이었다. 세월이 더께가 차곡차곡 내려앉은 자글자글한 주름, 비굴한 듯 난처한 듯 유약한 표정. 심지어 그를 늘 돋보이게 했던 큰 키와 긴 다리마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대같이 길고 구부정한 몸으로 헐렁한 양복을 입고 동창회로 영업하러 뛰어갈 때, 그의 휘적거리는 다리는 초라한 한수에게 딱 맞는 소품 같았다. 차승원만 그런 게 아니다.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아프게 현실적이다. 심지어 대부분은 어딘가 후진 구석마저 갖고 있다. 도박하던 호식이, 욕을 달고 사는 전직 조폭 인권이, 갚지 못할 돈을 꾸고 다니는 한수, 임신한 고등학생 커플, 늙고 병든 엄마와 연을 끊은 불효자 아들..."우리 모두가 각자 삶의 주인공이니 출연진 중 누구도 객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아서" 옴니버스 식 드라마를 구성했다는 작가는, 결함과 결핍을 지닌 인물 하나하나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깊은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엉켜버린 삶 속에서 마침내 희망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복잡한 심정을 다 담은 그늘진 얼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동석과 선아다. 선아는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자살, 동석은 아버지와 누나의 사망 이후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기억에 머무른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웃어 보아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괴로움은 그들을 옭아매어 그들의 일상을 삐걱거리게 한다. 선아는 우울증 때문에 이혼당하고 아이를 뺏겼다. 아이를 데려오고 싶지만 물에 젖은 솜이불을 뒤집어쓴  무기력에 시달린다. 정착을 시도했다 실패한 선아와 달리, 동석은 아예 부유하는 편을 택한다. 만물상으로 육지와 제주를 끊임없이 떠돌며, 지척의 엄마 집은 커녕, 트럭에서 생활하기를 고집한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오일장 근처, 엄마가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물건을 팔지만, 엄마에겐 연락도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여자를 만나도 절대 결혼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선아의 무기력도, 동석의 떠돌이 생활도, 사랑받을 자격 없다 믿는 자들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다. 사랑을 갈구하던 부모로부터 거부당했다는 깊은 좌절감은 동석과 선아를 홀로 침잠하게 만든다.

면도도 수면도 트럭 안에서 해결하는 동석


그래서 동석에게는 꼭 선아여야만 했다. 선아를 돌보는 일은 동석 자신의 마음에 난 생채기에 약을 바르고 새살을 돋치는 일이었으니까. 누구보다 애정에 목마른 동석 스스로의 분신이 선아였으니, 선아에게 사랑을 주며 스스로의 마음도 채워졌으리라. 그래서 동석의 사랑은 손 잡고 싶고 입 맞추고 싶은 남자 친구보다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뒤에서 보호하는 친오빠의 그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상처받은 두 어린 영혼은 서로에게서 한 조각의 위안을 찾았다. 만일 선아가 서울로 떠나지 않고 계속 제주에 있었더라면, 천천히, 하지만 틀림없이 그들의 상처는 아물고, 흐린 흉터로 남았겠지만 선아가 갑자기 제주를 떠난 탓에 그들의 치유는 정지되고, 생채기는 그대로 곪아버렸다.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었던 순간
다소 당돌하기까지 한 선아의 부탁도 별말없이 들어주고 속내를 보여준 동석

동석의 희망은 그토록 미워했던 엄마의 죽음과 함께 왔다. 나의 뿌리에게 버림받아 홀로 눈물짓고 원망하던 어린 자신의 한걸음 뒤에, 사랑을 어떻게   몰라 슬픈 아둔한 어멍 또한 있었다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되새길 때마다 방금 베인  쓰린 고통 무한루프에 갇혀 있던 그가 피해자로서의 자리에서 한발짝 벗어나 어멍의 아픔을 비로소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그저 ‘미안하다 소리를 듣고 싶었다지만, 사과의  백마디보다 공감은 힘이 세다. 나만큼 어멍도 아팠다는 , 어멍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음을 깨달으면서 그의 상처는 덧나기를 비로소 멈추었다.

동석은 이제 꼭 선아가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떠돌이로 살지 않고, 자기가 정착할 땅 한 칸을 당당하게 갈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선아를 위해 수리하고 있는 집이 그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행여 선아 전남편이 아이를 핑계로 재결합을 요구하고, 아이를 인생의 최우선에 두는 선아가 다시 떠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동석은 이번만큼은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난 사랑받을 수 없어, 라고 되뇌이던 과거에 마침표를 찍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던 고통의 순간에 비로소 '정지' 버튼을 누를 힘을 드디어 찾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석과 선아들이 상처를 뒤로 하고 새 삶을 향해 용감한 한 걸음을 내딛기를 기원한다.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인생은 ‘응원’ 받아 마땅하니까.


(모든 사진출처는 넷플릭스/TVN <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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