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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Apr 23. 2020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코로나도 무섭지 않으니

미국인들은 왜 총기를 들고 시위에 나서나

아빠가 보내주신 한국산 KF94 마스크가 도착했다. 재외국민들에게도 한 달에 한 명당 8장까지는 보내줄 수 있다는 규정이 생긴 덕이다. 미리 우체국 EMS로 신청을 하고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를 지참해 가면 박스 구매부터 발송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국제적 배송대란 속에서도 금세 귀한 마스크를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N95 마스크의 경우에는 1-2월부터 이미 구매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그때는 구매가 가능했던 부직포 마스크와 면 마스크, 필터로 꼭 나가야 할 때만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미국에서 한국산 마스크를 보고 이렇게 든든한 마음이 들 줄은 몰랐다. 다만, 미국에서는 지금 의료진이 쓸 수 있는 보호 마스크도 부족해서 '일반 시민들은 면 마스크 쓰고 좋은 건 의료진에게 양보하라'는 움직임이 있어서 쓰고 다니기에 눈치가 좀 보이긴 하겠다.


오늘자로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85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3월 신천지 감염자들 때문에 한국이 떠들썩할 때 곧 만 명을 넘기네 마네 하며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미국에서 이제까지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사람만 해도 47,000명이 넘는다. 내가 살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도 미국 전체에서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확진자가 다섯 번째로 많다 (37,000명). 집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삶은 요일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평화로운데, 집 밖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터가 아닐 수 없다.


집 안에 쥐 죽은 듯이 있어도 불안한 이 와중에, 마스크도 없이 거리로 나가 시위 중인 미국인들이 있다. 지난 주말 미국 여러 주에서 코로나로 인한 봉쇄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있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스크 따위는 하지도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보란 듯이 무시했으며 (아이들까지 줄줄이 데리고 나온 이들도 많았다), 미국 국기를 어딘가에 주렁주렁 달고, "자유"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는 플래카드와 포스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인 듯, 그의 재선 포스터 문구 (TRUMP 2020)도 종종 보였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들은 거대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로, 아무리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이는 건국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독재정치다. 때문에 지금 국가가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다는 이유로 essential과 non-essential 비즈니스를 구분해서 전자만 문을 열고 후자는 문을 닫게 만든 조치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짓밟는 짓이다.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거대한 음모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 가나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어차피 장사 망해서 죽나, 코로나 걸려서 죽나 마찬가지니 경제라도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많다.

출처) AP "여기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뜬금없이 소환당한 북한. 북한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걸 미국인들은 모른다.


이러한 시위는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자기들은 건강하니 무섭지 않다지만, 자기들이 뿌리고 다니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노약자들은?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사회적 격리 덕분에 그나마 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데 놀랐다. 사실 미국의 후진 의료시스템을 아는 나로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에 시달리는 걸 보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무런 준비도 없는 미국을 보며  꽤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3월 중순부터 지자체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조치를 내리면서 피해를 상당 부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 학교가 3월 13일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봄방학에 들어갔는데, 그 후 일주일도 안되어 주의 모든 폐쇄조치가 일어났고, 10인 이상이 모이는 활동은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확진자 수 급커브를 조금이라도 꺾어서 이제 정점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 상태로 얼마나 더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러한 시위가 터진 것이다. 일반 시민인 나도 화가 나는데,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식이었을까. 미국 병원에 일하는 의료진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구가 없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의료시스템도 잘 되어 있고 환자 수도 펜실베이니아 동쪽(뉴저지 인접한 필라델피아 지역)에 비해 훨씬 적어서 아직 의료체계에 부담이 크지 않은데도, 코로나 환자가 실려와야만 그제야 N95 마스크 한 장이 지급된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간호사도 보았다. 게다가 열흘 전 통계로 미국에서 9000명의 의료진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다 - 그 사이에 확진자가 급증했으니 의료진 감염 사례도 크게 늘었을 것이다. 말이 만 명이지, 우리나라 국민 전체 중에서 지난 두 달간 발생한 확진자 숫자와 비슷하다. 분노한 의료진들이 거리로 나가서 시위대와 팽팽한 대치전을 벌였고, 폭력 사태로 이어진 곳들도 있었다.


덴버에서 거리로 나온 시위대 차량 앞을 막아선 의료종사자와 이에  항의하는 시위자


시위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봉쇄 해제 시위대의 사진을 보다 보면 사람들 손에 낯선 물건이 들려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총이다. 장총, 기관총,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총을 꺼내는 순간 아비규환이 될 텐데,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는 시위대가 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해도 누구 하나 막아서거나 놀라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총을 들었을까? '내 말 안 들어주면 쏠 거다!'라고 협박하려고? 내가 지금 그 정도로 경제란에 시달리고 있으니, 빨리 안 풀어주면 이판사판이다! 라며, 스스로가 얼마나 절박한 지 보여주려는 몸짓일까?



그들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 어쩌면 총을 들고 나선 시위자 개개인은 순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위대를 뒤에서 조작하는 주체들은 그렇지 않다. 바로 총기 옹호자들, 즉 극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조직한 순수한 풀뿌리운동인 것처럼 보이려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극우주의자 단체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여 조직적으로 만들어서 내보내고 있는 활동이다. 특히 위스콘신,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를 타깃으로 하는 이 단체들은 가짜 뉴스를 뿌리고, 사람들을 모집하고, 돈을 모으고, 거리로 나아가 마치 정부의 봉쇄조치에 반대하는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사실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민주당의 95%, 공화당도 70%가 현재 미국의 봉쇄조치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봉쇄령 해제 주장은 자유주의자들 중에서도 극단적인 소수의 의견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과격한 모습이 자주 미디어에 등장하면 선동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극우단체 중 하나에서는 위스콘신 주에서 의도적으로 바이러스 통제를 위한 거리두기 같은 조치를 위배해서 구속당하는 활동가들에게 무료로 법률자문은 물론 보석금까지 내주고 있다고 한다. 총기 소지에 찬성하는 옹호 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들먹거리는 게 바로 미국의 수정헌법 2조 (Second Amendment to the U.S. Constitution: protect the inidividual right to keep and bear arms-개인이 총기를 소지, 보유할 권리를 보호) 아니었던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계층들의 약점을 자극하고, 총기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마치 미국의 근간인 자유를 옹호하는 것처럼 포장하여 분열을 조장하는 움직임, 참 별로다.


지금 미국 각 주의 주지사들은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공적으로 이어나갈지, 언제 경제활동을 재개해야 2차 감염의 파도를 피할 수 있을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는 백악관에서, 의회 밖에서는 이런 시위대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가 지도자와 질병관리본부장이 지자체와 함께 힘을 합해서 방역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은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하물며 여기에서 국가가 개인을 위해 공적 마스크를 확보하고 싸게 판매하는, 심지어 재외국민까지도 챙겨주는, 그런 '보호'를 기대할 수 있을까? 코로나는커녕 코로나 할아버지가 와도 어려울 것 같으니 일단은 내 가족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겠다.


(아래의 기사를 참조했습니다)

https://www.nytimes.com/2020/04/22/opinion/coronavirus-protests-astrotur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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