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안전할까?
코로나는 미국의 일상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왠만한 화이트 칼라 직장인들은 모두 재택근무를 했고, 거의 모든 학교와 대부분의 자영업이 문을 닫았다. 미용실/이발소 문을 닫아서 셀프미용 하다가 벌어진 대참사가 sns에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온다. 스타벅스를 포함한 식당들도 문을 닫았고, 열려있는 식당들은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게 했다. 헬스장도 문을 닫아 아령같은 홈트 기구는 물론 자전거 가게들도 유례없는 특수를 맞고 있다. 물론 이제 슬슬 대다수의 주에서 그동안의 강도높은 제한이 풀리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나 또한 두달간 모든 식료품을 배달에 의존했다. 어쩔 수 없이 UPS에 3분간 들렀던 두 번을 제외하면 어느 실내 건물도 들어서지 않았다. 그런데 6월말로 예정된 한국행 때문에 피치못하게 4시간 떨어진 영사관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딸아이 여권이 비행 전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미국 이중국적자인데, 하필이면 2월에 미국 여권도 만료되었다. 미리미리 챙겨둘 걸, 동네 우체국 가서 만들면 될 것을 당장 비행계획이 없다고 미뤘다가 코로나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내가 사는 주의 여권 업무가 언제 재개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 영사관은 여권 등의 민원 업무를 하고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인 지금, 여행을 가도 될 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할 지, 1박을 쉬고 올 지에 대해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운전을 할 남편의 피로도 문제지만, 나도 작년 겨울에 꼬리뼈가 부러져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앉아있기 힘들었다. 차멀미가 심한 둘째 아이가 8-9 시간을 차 안에서 어떻게 견딜 것인가도 걱정이었다. 결국 우리는 저녁에 워싱턴 D.C.에 도착하여 잠만 자고 아침에 영사관 업무를 보고 집으로 컴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호텔을 폭풍검색했다. 코로나 관련 의료진이나 응급구조사들에게 방을 내 주고 있는 호텔들이 여럿 있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호텔들은 패스했다. 그리고 조금 더 위생관리에 힘을 쓸 것 같은 곳에서 자기로 했다. 평소보다 호텔 가격이 반값 정도이라 다행이었다.
나와 통화한 호텔직원은 현재 호텔 내의 모든 식당은 문을 닫았으며,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부 메뉴는 룸서비스로 가능하다고 했다. 수영장과 헬스장, 스파 역시 문을 닫았다. 고객의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물으니 존스홉킨스와 전문가들과 무슨 위생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적용하고 있다는 기나긴 답변(듣다 말았다)이 돌아왔다. 방은 매일 EPA에서 승인한 제품을 이용해 살균소득하고 있으며, 자외선으로 방 전체를 검사한다고 했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평소 발레파킹과 벨보이들이 서 있는 호텔 입구에는 아무도 없고, 영업을 하는 건지 아닌 지 모를 적막감만 감돌았다. 차에서 내려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려니 직원이 문을 열고 나와서 체크인 할 거냐고 묻고 예약 이름을 묻는다. 다른 투숙객은 아무도 없고, 프론트에도 아무도 없고, 하다못해 청소하는 사람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 방까지 올라가는 동안, 처음에 만난 단 한 명의 직원 외에는 개미 한 마리 보지 못했다. 엘레베이터까지 안내해 준 Omar라는 직원은 자기가 오늘 밤 내내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연락달라고 했다. 외부에서 저녁 식사 배달이 오더라도, 우리가 1층으로 찾으러 갈 거 없이 자기에게 미리 전화주면 방까지 갖다 준단다.
내 집에 굴러다니는 먼지에는 평소 눈을 질끈 감는 나는, 유독 호텔에 가면 결벽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구석구석, 창틀 모서리까지 들여다보고 쓸어보는 버릇이 있다. 이번 방의 청결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화장실에는 마스크 2매와 작은 손세정제가 비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강아지를 데리고 (모시고?) 여행 중인데 강아지 침대와 밥그릇, 물통 등도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소파베드는 침대로 미리 세팅해 두었다. 룸서비스로 주문 가능한 메뉴는 생각보다 많이 적었다. 그래서 배달 앱을 통해서 주변 일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호텔 프론트에 전화하여 45분 후에 음식이 도착한다고 알려 줬다. 전화받은 사람은 여직원이었는데, 지체없이 음식을 방으로 가져다 준 직원은 Omar 였다. 낯선 공간 탓인지 우리 침대 발끝에서 자면서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벌떡 일어나 우리를 지켜주느라 밤새 고생한(?) 우리 강아지만 제외하면 나머지 식구들은 푹 쉬었다. (이렇게 용맹한 우리 강아지는 2kg도 안 나가는 요크셔 테리어다.)
다음날 아침 남편과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평소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워싱턴 D.C.의 M street가 텅 비었다. 다만 이날 (5/29) 부로 워싱턴 D.C.에서도 집에 있으라는 행정 명령(Stay at home)이 해제되어, 식당들의 경우 야외 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는 건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인지, 야외 자리에 오픈을 준비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한 곳은 방송국과 리포터가 와서 뉴스 클립을 촬영중이었다. 강가에서 조깅하는 시민들이 이따금씩 보였고, 여전히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평소 유동인구량의 1/4 정도가 될까 말까 했다. 체크아웃 전에 미리 프론트에 전화를 해 두었다. 체크아웃 및 차 빼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오전에 영사관 일을 마무리하고 점심거리를 사서 출발했다. 시골(?)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고 양옆의 푸른 초원을 바라보니 비로소 조금 긴장이 풀렸다. 아이들 안전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이 예민해진 여정이었나보다. 단 하루, 단 한 곳의 호텔에서만 투숙했으니 일반화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안심되는 시간이었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콧바람 쐬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 코로나를 뚫고 여권도 받았는데, 우리는 과연 올 여름 한국에 갈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