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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Jun 01. 2020

나쁜 놈들 전성시대 - 미국이 불타고 있다

거짓말과 약탈로 점철된 미국, 최강 빌런은 누구인가

루이비통, 구찌, 애플 매장에 얼굴을 가린 폭도들이 들이닥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물건들을 훔쳐 달아난다.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경찰을 폭행하고 최루가스를 쏘는 경찰과 대치한다. 주 경찰청 건물과 가게들이 불에 탄다. 통금이 선포되어 저녁부터 이른 아침까지 시민들이 외출할 수 있는 자유를 잃었다. 미국 전역에 걸쳐 수백개의 가게가 약탈되었고, 수십건의 방화가 일어났으며, 수백명이 구속되었다.


어젯밤 CNN 뉴스화면
필라델피아의 스타벅스가 불타고 있는 장면


베네수엘라나 르완다 같은 개도국 이야기가 아니다. 70년대, 80년대 배경도 아니다. 2020년 5월, 미국에서 당장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뉴욕, LA, 시애틀과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대도시들부터, 내가 살고 있는 중소도시인 피츠버그까지 수많은 도시들이 똑같은 패턴의 폭동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미네소타 경찰이 비무장 상태였던 George Floyd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전혀 몸싸움이 없었음에도) 백인경찰이 무릎으로 Floyd의 목을 압박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피해자가 숨을 쉴 수 없다며 고통을 토로했으며, 주변에 지켜보던 시민들 여럿도 무릎을 떼라고 호소했으나 경찰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9분간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는 이 날 사망했다. 미네소타 경찰은 이 경관과 그와 함께 있던 세 명을 단순히 해임조치함으로써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는 2013년에 시작된 #BlackLivesMatter 운동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20년의 시위는,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참담하다. 한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세계의 최강대국, 미국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1992년 Rodney King의 사망으로 촉발된 LA 폭동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LA 교민들은 어젯밤 불안과 트라우마에 떨어야 했다. 미국 내 다른 도시 내에 사는 여러 친구들도 밤새 사이렌 소리와, 자주 다니던 가게들이 공격 당하고 있다는 실시간 문자 뉴스 속에서 밤을 새웠다.


내가 사는 피츠버그에서도 마찬가지로 평화롭게 시작된 시위가 어둠이 깔리면서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 의외였다. 피츠버그는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다 (주변 위성지역을 합치면 230만). 말이 동부지, 중부 시골로 들어서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라 사람들도 동부 깍쟁이들보다 훨씬 느긋한 편이다. 심지어 인종간 다양성도 크지 않다. 그런 곳에서 폭력 시위라니? 지역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건의 개요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많은 피츠버그 시민들이 George Floyd의 희생에 격분하여 평화로운 시위에 나섰다. 흑인들만이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피츠버그는 백인이 훨씬 더 많은 도시다. 많은 백인들이, 아시안들이, 유태인들이, 흑인들과 함께 거리에 나섰다. 2018년 가을에 피츠버그에서 발생한 유태인 예배당 총격사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범행으로 11명의 유태인이 사망했다) 때처럼, 피츠버그 시민들은 단결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시위 동참을 호소하는 시간/장소/규칙등이 붙었다. 꼭 마스크를 쓰고,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며, 아픈 사람은 나오지 말 것 등 (아직 미국은 코로나가 한창이다). 젊은이, 노약자 너나 할 것 없이 플랭카드를 들고 나서서 차별 철폐와 인권 보호를 외쳤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많은 시민들은 마스크와 생수 등을 들고 나와서 다른 시민들에게 흔쾌히 건넸고, 경찰들 또한 멀찍이 서서 차량을 통제하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피츠버그 다운타운에서 벌어진 시위. 이때만 해도 평화로웠다 (출처: reddit)

수많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화롭게 전개되던 시위가 갑자기 폭력적인 양상을 띄게 된 것은 검은 옷차림, 검은 복면을 한 젊은 남자가 세워져 있던 경찰차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하고 불을 붙인 다음부터. 그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이 (솔직히 젊은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쳐도 18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음)에게 뭐하는 짓이냐, 그만해라, 라며 제재했지만 그는 손가락 욕을 날리며 분주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영상이 궁금한 분들은 여기에: https://www.reddit.com/r/pittsburgh/comments/gtn3ps/video_of_the_anarchist_who_started_attacking_the/) 비슷한 차림의 백인 남성 3명이 이 일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들은 황급히 현장을 떴다고 한다. 얼굴 정면 사진도 많이도 찍혔고 목격자도 많은데 아직 이 청년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동네 사람이 아닌 듯 하다). 경찰차가 불타면서, 평화롭던 시위는 팽팽한 긴장의 전쟁터로 변했다. 경고 후, 경찰의 최루탄과 고무탄 발포가 이어지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찰에게 잡혀간 이들도 있고, 맞아서 피를 흘리는 이들도 있고, 다른 시위대에게 의약품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장은 통금을 선포했지만, 밤이 되자 거리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수백명이 스타벅스, 운동화 가게, 편의점, GNC(영양제 먹어가면서 힘내나보다) 등 총 60곳 가게의 유리창을 다 깨고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44명을 체포했고 경찰 네 명도 입원했다. 어떤 도시에서는 강경 진압이 이루어졌고, 어떤 곳에서는 경찰도 함께 평화시위에 참여했다.

불타는 피츠버그 경찰차
플로리다 경찰들은 무릎을 낮춰 시위대와 뜻을 함께 했다. 이 제스추어는 미식축구 선수인 Kaepernick이 국가에 대한 경례 대신 흑인차별에 대한 항의표시로 택한 행위다.
오늘 아침 (5/31) 거리와 골목마다 자발적으로 시위 현장을 치우기 위해 모인 시민들


피츠버그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이번 시위를 주도했으며, 혹시 대도시처럼 폭력 사태로 변질될까 우려했던 흑인 단체의 리더들은 허탈감과 좌절감이 크다. 현장에서도, 온라인 상에서도 많은 흑인들이 경찰차에 불지르는 청년에게 분노를 표했다. 수많은 시민들은 오늘 아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도심으로 다시 나가 어지럽혀진 시위 현장을 치우기 위해 모였다.


그렇다면 대체 나쁜 놈은 누구인가?

우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나쁜 사람들은 무고한 사람을 사망에까지 이르게 만든 경찰관이다. 그리고 제때 그 경찰관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고 미적거려서 (지금은 구속되었다) 사람들을 화나게 만든 경찰청,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악용되는 면책특권, 그리고 잘못된 판결을 내려온 판사들에게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난번 센트럴파크의 '김여사'(https://brunch.co.kr/@mbaparkssam/23)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겉으로는 흑인차별을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백인으로서의 특권(white privilege)을 교묘하게 무기로 이용하는 백인들도 있으니 그그들도 책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하나 거론되는 것은 무정부주의자들이다. 피츠버그 경찰차에 불을 지른 이들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무정부주의자와 (구)소련을 상징하는 빨간 낫과 망치를 차체에 그려두었다. 이들은 피츠버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스하키 선수인 마리오 르뮤의 동상에도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로 같은 문구를 남겼다. 피츠버그 경찰청장은 처음에 폭력 사태를 일으킨 네 명의 백인 남성은 물론, 그외에 사태를 심각하게 만든 시위자 중 혼란을 야기할 목적으로 참여한 무정부주의자들이 많았다고 단정한다. 각 도시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촉발시킨 것은 이상하게도 백인들이었기 때문에 무정부주의자로 가장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각 도시로 파견(?)되어 폭력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발빠르게 ANTIFA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겠다고 트위터로 발표했다. 안티파는 파시즘 반대자들이라는 의미로, 극좌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지만, 극우와 다름없이 폭력을 불사하는 이들이다. (일반 시민인 내 관점에서는 극우나 극좌나 시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건 똑같다.)


당연히 약탈에 동참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일 먼저 불을 지르고 창문을 깬 건 아니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아예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쇼핑몰 앞에 자동차를 대 놓고 기다렸다가 약탈이 시작되자 훔친 물건을 차로 실어나른다. 애플스토어에 들어가 애플워치는 싫다며 쇼핑하듯 약탈품을 골라(?)가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CNN 뉴스에 버젓이 차 넘버가 전국에 생중계된 도둑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찾아낸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다. 다만 이는 흑인 뿐 아니라 빈곤과 교육, 범죄 등이 얽힌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즉, 자기가 부시지 않은 쓰레기 치우려 새벽에 통금 해제되길 기다려 나가 청소하는 훌륭한 시민의식의 소유자도 많지만, 남의 거 훔치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인간들이 많은 곳 또한 미국이다. 그리고 진보도 보수도, 정부도 무정부주의자도, 서로가 젤 나쁘다며 싸우고 있다.


아래 영상 보면 흑인 아닌 사람들도 많다. 정말 없어 보인다.

출처) https://www.rt.com/usa/490238-la-jewellery-shop-looted-george-floyd-protests/video/5ed267bf85f5400ca776ba16/

무리로부터 떨어진 백인경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띠를 만든 흑인 청년들

인종 문제는 미국의 뇌관이다. 오랜 기간 이어 온 아픈 역사이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보니 누군가 말하기가 참으로 조심스럽다. 심지어 영상에 뻔히 찍힌 약탈과 방화를 보고도, "흑인들은 수십년간 이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았는데, (너희들은) 이제서야 불편해하다니. 이런 일련의 사태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의식을 고취시키는 효과도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대통령도, 주지사들도, 흑인 지도자들도 지금은 별 도움이 않는다. 트위터를 열심히 하시는 한 분 말고는, 도리어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물론 폭력에는 분노하지만 엄마같은 사랑으로 호소한 리더도 있다. 애틀란타의 시장인 키샤 랜스 보톰스다. (남부 조지아 주의 대도시인 애틀란타에는 흑인이 많은 만큼 흑인 자영업자들의 가게도 많다.) 그녀는 이러한 폭력이 마틴루터킹의 정신과 전혀 이어지지 않으며, George Floyd와 희생자들의 죽음을 오히려 헛되이 만들고 있다고 목청을 높인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선거를 통해서 하라고. 집에 가라고.  


과연 미국에서도 우리나라 촛불집회같은 평화적 시위가 가능하고, 그를 통해 미국 사회가 변화할 수 있을까?

한 미국 친구는 미국도 한국의 촛불집회를 닮아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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