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어느 옛 나라의 우화
지금은 그 이름조차 남지 않은 옛날 어느 나라의 이야기다.
그 나라에는 ‘경’ 혹은 ‘결’이라고도 불리는 짐승이 있었다.
커다란 새인지, 네 발 짐승인지, 혹은 뱀같은 땅 짐승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매우 낯설지만 아름답고 신비한 소리를 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소리는 마치 천국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같았다.
또 이 짐승은 그 자태가 매우 우아할 뿐 아니라 자기 주인을 아주 잘 따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짐승을 한 번 키우면 죽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이처럼 귀한 짐승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짐승의 외양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저마다 그저 상상할 뿐인데,
어떤 이는 기린처럼 길쭉한 몸에 공작 같은 깃털을 가졌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목이 그리 길지 않아 사슴처럼 생겼다고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갸름한 고양이 얼굴에 새하얀 양의 몸통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어떤 이야기조차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도 있다.
이 짐승은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았던지, 주된 먹이가 강아지, 송아지, 새끼 양이나 염소,
새끼 돼지, 심지어는 새끼 고양이처럼 아주 어린 짐승들의 부드러운 생살과 내장이었다고 한다.
먹는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 짐승을 기르려면 어린 가축을 자주 죽여야 했기에,
처음부터 왕이나 극히 일부의 왕족만이 이 동물을 가질 수 있었다.
새끼도 한 번에 한 두마리만 낳았는데, 이 마저도 이, 삼년 만에 한 번이라,
왕실은 전담 부서와 의원을 궁 안에 두어 이 까다로운 짐승의 번식과 건강을 관리했다.
그러니 왕자나 공주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져 궁 밖으로의 유출을 철저히 막은 것은 물론,
궁 안의 신하들조차도 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조심스럽게 구경할 수 있었다.
*
이 나라의 어떤 때의 왕이 이 짐승을 유달리 더 사랑했다.
나랏 일보다는 이 짐승을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온종일 짐승의 깃털을 쓰다듬고 감탄하며 즐기다가도, 가끔 신하들을 만나서는
어떻게 하면 이 짐승을 더 잘 돌볼 것인가를 진진하게 물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린 딸이 이 짐승의 새끼를 한 마리 달라고 조르며 떼를 썼다.
왕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이 짐승은 아무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딸이 포기하지 않자 왕은 버럭 화를 내며 딸을 궁 밖으로 쫓아냈다.
세월이 흘러 이 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게 되었을 때,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죽거든 이 짐승 열 마리쯤을 자신과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새 왕은 얼굴을 잠시 찌푸렸다가, 곧 다시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아버지가 죽자 이 짐승 대신 어린 여자아이 열 한 명을 곱게 단장시켜 순장시켰다.
이와 유사한 일이 이 왕 이후에도 가끔 있었고,
이 때마다 이 짐승 대신 어린 소녀들이 산채로 땅에 묻혔다.
어느 때부터인지 이 짐승은 까다로운 번식 조건 속에서도 왕궁뿐 아니라 귀족 가문으로도 퍼졌다.
귀한 혼인 선물로, 관리를 구워삶는 뇌물로도 인기가 있었고,
발톱을 다듬어주거나 깃털을 곱게 펴주는 식으로 더 아름답게 치장해주는 전문가,
먹잇감이 될 어린 가축들을 따로 길러 파는 업자들까지 생겨나 성업을 이루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 가축들의 울음과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백성들도 고기를 먹지 못해 비쩍 말라갔지만,
이 동물의 울음소리와 그 자태에 한번 매혹되고 나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인지,
불쌍한 백성들 속에서조차 누구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왕이 서너 번 더 바뀌었고,
마침내 이 짐승을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한다는 왕이 옥좌에 올랐다.
그는 즉위 초기에는 이 짐승이 죽었을 때 왕실의 묘에 묻고 제사를 지내주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이 죽은 짐승을 위해 왕릉 못지 않은 무덤을 만들어
어린 소녀와 짐승 새끼들을 함께 산 채로 묻히게 했다.
왕은 궁궐 곳곳, 나라 곳곳에 이 짐승의 조각을 세우고, 왕관과 의복, 사용하는 물건들까지 모두
이 짐승의 그림으로 장식하게 했다.
이 나라는 점점 더 이 짐승의 아름다운 소리와 온갖 신비로운 형상으로 가득 차게 되었지만,
그 즈음부터 큰 가뭄과 홍수가 일어났고,
흉년이 자주 들었고,
여기 저기서 도적떼가 들끓기 시작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