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와불과 까마귀(1)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by 박독수

깊고 긴 잠을 잤던 것일까, 문득 눈을 뜨니 세상이 보인다.

푸른 하늘과 뭉게뭉게 흰 구름, 눈부신 태양, 먼 곳에 첩첩이 쌓인 산들과 검고 깊은 숲,

그 아래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 강물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과 바람에 춤추는 풀잎들,

가끔씩 날아오르는 새들...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몸을 움직여 본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몸이 돌덩이처럼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 몸을 볼 수가 없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손으로 얼굴이나 몸을 만져 볼 수도 없다.

손발이나, 팔다리, 아니 몸뚱아리가 도대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날씨가 추운지, 더운지도 느끼지 못하겠다. 살아있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 정도이다.

마치 깊은 산 속의 묘지가 파헤쳐져, 시신의 눈과 귀만 살아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람이었을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을 지라도 내가 한 때 사람이었다는,

아니 지금 현재 동물이나 식물, 아니 생명체일 거라는 증거도 없다.

나는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로 다가와 나를 흔들며 "일어나 보세요!" 라고 말을 걸면 정말 좋겠다.

나를 보고 징그럽다며 얼른 덮어버리거나, 무서워 도망가기라도 하면,

나는 내 존재에 대해 조금은 안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여기 잘 마른 나무토막이 있네."라며 나를 냉큼 주워다 난로 불에 태워버린다 해도

크게 섭섭해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작은 통증조차 없이 이렇게 멀쩡한 것을 보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나무조각은 아닌 듯 하다.

또 바람이 세게 불어도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치면 살아있는 나무나 풀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 본다거나, 듣는다거나, 생각한다거나 하는 것도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모른다.

존재는 자각이 아니라 타자의 인정으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하늘을 보고 물소리를 듣고 있질 않은가?

누군가, 무엇인가가 나타나 나의 존재를 입증해 줄 때까지는 나는 있지만 없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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