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시대, 황혼기에서 암흑기로
하지만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 '글'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글을 모르고서는 권력층이 될 수 없지만,
많이 읽고 잘 쓴다고 해서 반드시 권력층이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 때 너무나 소중하고 고귀해 보였던 능력이
이제는 너무 너무 흔해져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조차 합니다.
문과보다는 이과가,
작문보다는 코딩이 삶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었으니,
인기작가나 일부 학자, 교수들의 글이 아닌 일반인의 글쓰기가
별 의미없게 느껴지거나 한가한 소일거리 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도 보입니다.
이제 인간의 일상활동 가운데 평범한 글쓰기는
현저하게 약화되다가 끝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은 중노동인데
고된 노동의 결과물로서의 글은 옛날만큼 읽혀지지 않습니다.
범람하는 영상물 속에 댓글은 배설물처럼 쏟아지지만,
마땅히 읽고 음미할 말한 글은 찾아내기 힘들지요.
글쓰기를 생산이라 하고, 글읽기를 소비라고 할 때,
생산과 소비의 순환 구조가 파괴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요즘에 종이 공책에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가죽 커버의 두툼한 시스템 다이어리는 물론이고,
때로는 종이 달력도 찾아보기 힘든 그야먈로 Paperless 시대가 되었지요.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최근의 AI 등장으로
글쓰기의 수단은 더 다양해지고 공유하기도 쉬워진 것만은 분명한데,
인류 문명의 도저한 강줄기 역할을 하던 문자 활동이
이토록 빠르고 흉하게 마른 바닥을 드러내는 걸 보니,
우리 시대가 이미 소리와 그림(영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선사시대로 퇴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망상이라면 좋겠지만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