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와 단군신화

통마늘 한 알의 단상

by 박독수

1.

마늘 파스타에 맛을 들였다.

불에 닿아 매운 기운이 쑥 빠진, 투명한 마늘 살의 구수한 풍미가 매력이다.

얼마 전 완주에 갔을 때, 그때가 마침 장날이어서

일행 중 한명과 통마늘 한 접을 사서 반반씩 나누었다.

시중에서 파는 까놓은 마늘이 별로 신선하지 않아 늘 불만이었던 터라,

산지에서 직접 파는 싱싱한 마늘에 마음을 쉽게 빼앗겼다.

집으로 돌아와 양파 망에 넣어 베란다 높은 곳에 매달아 두었다.

그 통마늘 반접을 올려볼 때 마다,

나는 마늘 파스타를 해 먹을 생각에 혼자 군침을 삼키곤 했다.


KakaoTalk_20230710_210136693.jpg?type=w773


2.

그런데 혹시 마늘을 까 본 적이 있는가?

아직 없다면 미안하지만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마시라.

아니면, 지금이라도 마늘을 까시고 난 후에 이 글을 읽으시라!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와 곰의 대결은

다 아는 것처럼 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만약 환웅이 호랑이와 곰에게

사람처럼 되기 위해서는 마늘을 '까서' 먹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면,

이 게임은 애초부터 불공정하다.

쑥은 그렇다 치고, 몇 겹의 껍질로 중무장한 통마늘의 철통방어 앞에

호랑이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연장으로 치면 호랑이의 앞발은 타격용 ‘망치’ 정도지만,

곰의 앞발은 손처럼 좁히고 벌리는 데 쓰이는 ‘펜치’에 더 가깝다.

두 종류의 연장이 보이는 마늘 까기의 적합성과 효율성은 비교할 수 없다.

아마도 호랑이가 일찌감치 게임을 포기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것은,

얼핏 봐도 일방적으로 곰에게 유리한 게임의 룰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면 캡처 2025-08-02 083447.png



3.

흔히 좋은 마늘에 대해 육쪽마늘이니, 팔쪽마늘이니 하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막상 마늘 한통, 한통을 깨트려보면 이렇게 딱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큰 놈 서너 개에 작은 놈, 더 작은 놈들이 너 댓 개씩 오종종 붙어있다.

또 그런 놈들이 작다고 껍질이 없는 것은 없다. 작든, 크든 어느 놈이건 두툼한 갑옷을 입고 있다.

너무 짧은 손톱도, 긴 손톱도 마늘을 까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마늘을 까기에 앞서 손톱의 길이를 잘 준비해야 미션을 완수할 수 있다.

손이 고생하는 것, 즉 수고 말고도 눈물, 콧물도 적당히 쏟아내야

마늘의 갑옷을 제대로 벗겨낼 수 있다.

처음 마늘을 까보는 사람치고

단군신화 속 호랑이의 좌절과 분노를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EB%8B%A4%EC%9A%B4%EB%A1%9C%EB%93%9C.jpg?type=w773


4.

처음 마늘 한 통을 까는데 넉넉히 잡아 대략 5분 정도 걸렸다.

5분이면 긴 시간이 아닌가?

그 시간에 깐 마늘, 다진 마늘을 사서 먹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가?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바쁜 세상에 한 알, 한 알 누가 마늘 껍질을 벗기고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정말 바쁜가?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가? 언제까지 그리 바쁘게 살 텐가?

혹시 손발 쓰는 일을 하찮게 여겨 남에게 미루려는 것은 아닌가?

곰이 마늘을 까서 사람이 되었듯이,

당신도 이제는 제 손, 제 발로 뭔가를 해 낼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끝)



* 저의 글 정원 주소입니다. 잘 가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oxoo64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어린 왕자에게(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