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가을밤의 추억

'세계 고양이날'을 다시 기념하며

by 박독수

오늘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란다.
문득 잊고 있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와 한 고양이가 함께 했던, 오래 전 가을밤 이야기다.


중학생 시절, 내가 살던 분당은 지금처럼 도시가 아니었다.
성남에서 광주로 가는 3번 버스를 타고 야탑초등학교를 지나 이매리에서 내려

징검다리를 건너야 닿는, 서른 집 남짓한 작은 마을.

왼쪽엔 야트막한 산과 언덕, 오른쪽엔 탄천이 구불구불 흘렀다.

아버지는 크지 않게 농사를 지으셨다.
어느 봄날, 창고에 쥐가 많다고 고양이 한 마리를 들여왔다.
진회색인지, 흐린 검은색인지 모를 털빛이었다.


며칠 뒤, 옆집 할머니가 놀러왔다.
“쥐 잡는 고양이네. 우리 집에도 쥐가 많으니 하룻밤만 빌려줄래?”

어머니는 흔쾌히 그러자 하셨지만, 나는 못마땅했다.
아직 우리 집에도 익숙지 않은 고양이를 빌린다니.
게다가 고양이는 물건이 아닌데.

그러나 시골에서 인심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고양이는 나를 향해 ‘야옹’ 울었지만, 속으로만 미안하다고 했다.

고양이는 그렇게 물건이 되어 낯선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아침, 대문이 덜컥 열리더니 할머니의 쉰 목소리가 안방을 지나 내 방까지 들어왔다.
“이 고양이, 쥐는 안 잡고 새 이불에 똥만 싸놓고 도망갔어!”

마당을 가로질러 뒷방에 가니, 고양이는 농기구와 마대자루 틈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쌤통이다, 깜나비. 잘했어.”

서리가 내릴 무렵, 깜나비는 뒷방에서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어미와 달리 얼룩무늬도 섞여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다시 얌체짓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새끼가 든 집을 들여다보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두세 달 지나면 저 얼룩이 암컷 두 마리, 나 꼭 주는 거야. 약속이지?”

깜나비는 입구를 가로막고 이빨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니가 무슨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그런데 일주일 뒤부터, 새끼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결국 한 마리만 남았다.
어머니는 놀라셨다.

“이게 무슨 일이래? 누가 훔쳐가는 거야?”

그날 밤, 아버지는 깜나비 목에 줄을 매었다.
혹시라도 어미가 새끼를 더 데리고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깜나비의 애절한 울음은 밤하늘을 찢었다.
결국 아버지가 줄을 풀어주셨다.

풀려난 깜나비는 곧장 달빛 비치는 논길을 앞서 걸었다.
우리는 목에 줄을 멘 채 달려가는 그를 숨을 헐떡이며 쫓아갔다.


그가 멈춘 곳은 지금의 정자동 근처 오래된 농가였다.
대문이 열려 있었고, 깜나비는 볏짚이 지붕까지 쌓인 창고 앞에서 멈췄다.

목줄을 풀자, 재빨리 볏짚 위로 뛰어올랐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집 주인 할아버지가 나와 말했다.
“허, 오늘 저녁에야 새끼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그 놈이 어미여? 영물이라더니 진짜 영물이네.”

몇 대가 모여사는 집인지, 시간 차를 두고 사람들이 자꾸 나와 대문 앞에 모였다.
아버지는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그 중에 어린 여자아이는 매번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들었다.


늦가을의 맑은 달빛, 볏짚 위의 고양이들의 울음소리.
그 날의 장면은 거기 모인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두고 두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것이다.(끝)



* 저의 글 정원 주소입니다. 잘 가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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