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기쿠지로의 여름>(Takeshi Kitano, 1999)
여름이다.
봄이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시간이라면 여름은 그 싹이 자라는 시간이다.
여름을 잘 보내야 가을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여름은 비를 동반한다. 자주, 그리고 길고 굵게 내리는 빗속에서,
때로 거센 바람과 싸우며 모든 생명들은 치열한 성장의 경주를 벌인다.
그러다 마침내 장맛비가 그치고 뙤약볕으로 이글대는 여름이 지나면
어떤 것은 잊혀지고, 어떤 것은 기억되며
어린이는 어른으로, 청년은 중년으로, 중년은 노년으로 성숙해간다.
그런데 여기 삶의 경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넘어진 한 아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곁에는 부모가 없다.
이제 출발의 총소리는 울렸는데, 그는 금방 일어설 수 있을까?
그를 부축해 일으킬 사람은 아무도 없는가?
다른 또 한 사람, 인생의 언제쯤인지,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 일어나지 못한 채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사내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증오와 원망, 분노의 주먹을 허공에 휘둘러대며 살아왔다.
그는 이제 일어날 수 없는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일까?
그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와 사내가 동행이 된다(주1).
아이의 이름은 마사오, 조숙하지만 늘 기가 죽어있다.
이름을 좀처럼 알 수 없는 사내는 미숙하고 다혈질이다.
왕년에 주먹 깨나 쓴 것처럼 보이는 백수건달이다 보니
누구든 쉽게 다가와 이름을 부를 일도 없을 것 같다.
엄마를 찾아갔다 다시 동네로 돌아올 때까지의 긴 여행 동안,
마사오는 사내를 그냥 아저씨라 부른다.
때로 이름이란 선물의 포장과도 같다. 알맹이가 마음에 들면 포장도 함께 간직하기도 하지만,
알맹이가 싫으면 포장 따위는 그저 쓰레기나 다름없다.
부모 없이, 특히 성인 남자와 접촉없이 살아온 마사오에게
백수건달 사내를 통해 열리는 어른들의 세계는 호기심보다는 혼란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백수건달은 경륜장에서든, 호텔에서든 늘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협박과 폭력, 거짓말 없이는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한다.
동네에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눕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형들은 담배를 피우며 꼬맹이들에게 돈이나 뺏고,
학교 체육 선생님은 심심한 아이와 놀아줄 생각이 없다.
공원에서 만난 노인은 마사오를 성추행하려 하고,
어린아이나 장애인의 히치하이킹을 흔쾌하게 받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로봇춤을 추는 젊은 커플과의 행복한 시간조차도 ‘출입금지’의 커다란 푯말을 넘어가야 한다.
어른들에 대한 마사오의 실망은 고생 끝에 엄마를 봤을 때 절정에 이른다.
마사오를 위해 일하러 갔다는 엄마는 웬 남자, 여자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사오는 꿈속에서나 만나는 엄마를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하고 돌아서서 운다.
마사오가 아들이 되고, 백수건달이 아빠가 되어 함께 사는 꿈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엄마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며, 마사오의 심정은 크게 넘어진다.
어른들이란 엄마조차도 모두 그런 것인가?
마사오의 외할머니는 딸의 재혼을 알았을까? 딸은 엄마에게도 이를 숨겼을까?
모순과 의문투성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넘어진 마사오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누가 마사오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마사오 못지않게, 아니 마사오보다 더 실망했을까?
백수건달 사내는 마사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영화 초반에 외할머니 친구로 소개되는 여자(부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마사오의 엄마가 바람난 거 아니냐는 백수건달의 말에, 당신 엄마랑 똑같은 줄 아냐며 받아친다.
또 시골길의 정류장에서 사내는 마사오에게 엄마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음을 확인한다.
그는 한탄하듯 읊조린다. “나랑 팔자가 똑같구나.”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백수건달 역시 마사오처럼 엄마, 혹은 어른들의 세계에 실망했으며,
이 상처로 인해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뒤틀린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백수건달은 마사오를 위해 뭔가 해야함을 느낀다.
마치 유원지에서 두들겨맞은 그를 마사오가 돌봤던 것처럼.
그는 ‘어른 아이’ 같은 그답게 천사를 부른다. 천사들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런데 천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은 넥타이를 메고 바삐 출근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쓸 시간이 없는 도시의 엘리트들이 아니다.
할 일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시간을 죽이는 대머리, 뚱땡이들이다.
별을 보며 소설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은 떠돌이 시인이다.
경쟁에서 탈락해 변두리로 밀려난 ‘루저’들의 모습이다.
그런 그들이 이제 불쌍한 한 아이를 위해 놀이 캠프를 꾸민다.
약자들이 약자를 돌본다.
비극은 희극에 가려지고, 마사오의 상실감은 조금씩 사라진다.
.
그런데, 치유받으며 성장하는 것은 마사오 뿐이 아니다.
마사오의 아픔, 슬픔을 위로하면서 백수건달은 어느덧 어른의 자리에 서게 된다.
여행 초반 도시의 경륜장에서, 호텔에서 자기 멋대로, 자기 좋은 대로 행동하던 그는
이제 시골의 유원지, 개구리 우는 연꽃호수, 북두칠성이 보이는 강가 등에서
마사오를 즐겁게 하는 일, 예를 들자면 총으로 인형 맞추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어린이 놀이에 몰두한다.
이 여름 이전까지, 마사오를 만나기 전까지, 사내가 누군가 자신보다 약한 자를 돌본 적이 있을까?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 애쓴 적이 있을까?
캠프가 열린 시골강변은 백수건달의 고향 근처로 생각된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길, 실망한 마사오의 빈 가슴을 채우기에는 여름의 시골만큼 적당한 곳이 없는데...
영화에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백수건달은 그렇게 길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강변의 캠핑장에서 평소 그답지 않게 혼자 떨어져 앉아 무슨 생각에 빠져있던 그는
문득 뚱땡이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에게 어머니는 무엇일까? 그리움일까, 원망일까?
이제는 나이 들어 홀로 우두커니 창밖만 바라보는 어머니를 그는 굳이 대면하지 않는다.
그저 먼발치서 바라만 보다 다시 무슨 생각에 빠진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다 아물어 흉터만 남았다 믿었던 상처가 마사오 때문에 다시 아파오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나만 가장 외로운 줄 알았는데, 저기 또 나 같은 인생이 있구나.
저 아이가 과연 엄마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사랑에 굶주린 아이,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누구도 먼저 주지 않아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하는 아이,
그렇게 커서 불량배가 되고, 폭력배가 되었다가 이제는 그 세계에서조차 밀려나
덩치만 어른인 나처럼 되지는 않을까?
엄마가 나를 버린 것처럼,
나도 일찍 엄마에 대한 생각과 미움을 버렸더라면,
용서할 수는 없어도 잊어버릴 수는 있지 않을까?
이제는 엄마로부터 벗어나자.
영화를 꼼꼼히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사실은 엔딩 장면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뛰어가는 마사오의 꽃무늬 옷은 호텔 수영장에서 백수건달이 사 준 옷이다.
그의 등가방에는 천사의 날개가 달려있고, 마사오의 발걸음은 가볍다.
마사오를 위해 먼 곳으로 일하러 갔다는 엄마가 사실은 재혼한 것임을 알게 된 여행이었는데,
마사오의 모습에서 실망감은 찾아볼 수 없다. 왜일까?
그것은 그의 마음 속, 애초부터 100% 기대하지 않았던 엄마의 자리에 ‘아저씨’,
즉 백수건달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마사오는 그의 이름을 묻는다.
아직 그것도 모르냐며 백수건달이 답한다. "내 이름은 ‘기쿠지로’야!"
마사오는 이번 여름과 기쿠지로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기쿠지로가 아니었으면 마사오는 엄마를 봤던 그 자리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쿠지로와 천사들이 마사오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나랑 놀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
그래, 이제 엄마는 잊어버리자. 기쿠지로 아저씨가 있잖아!
마사오는 인생이라는 경주가 계속되는 한
천사의 날개가 달린 등가방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기쿠지로는 마사오처럼 뛰어가지는 않았다.
그도 이제 어른이다. 더 이상 주저앉아 상처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마음에 남은 먼지까지 모두 툭툭 털고 일어나 비로소 완전한 어른이 된다.
기쿠지로에게도 이번 여름은 특별할 것이다.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불운도 있는 법,
넘어졌던 그 곳에 엄마를, 원망을 내려두자.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사랑하며 새 길을 가자.
마사오와 기쿠지로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 <Summer>는
그래서 그토록 경쾌한 것이 아닐까?(끝)
주(1) 버디무비이자 로드무비의 사례는 적지 않다. 계획되지 않은 여행x불편한 동행x어른과 아이의 우정을 다룬 영화로는 <퍼펙트 월드>(Clint Eastwood, 1993)와 <중앙역>(Walter Salles, 1998)을 들 수 있는데, <기쿠지로의 여름>은 <중앙역>과 유사한 결말을 보여준다.
* 저의 글 정원 주소입니다. 잘 가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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