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
지난주에 이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주에는 K 콘텐츠의 킥은 무엇일까 질문했었는데요. 이제는 정말 K 드라마, K 팝... K 컬처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만든 모든 것에 K만 붙이면 끝인 걸까요?
너무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막상 대답하려면 참 어렵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너무 흔한 일상이라,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지 깜빡 잊고 살기 때문 아닐까요?
한국인으로서 배우게 되는 한국의 문화나 역사는 당연히 우리 것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오늘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오랫동안 그런 고민의 끝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게 된 INFP의 글을 만나보세요.
케이팝을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아이돌 문화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즐겨 듣는다고 말할 만한 아이돌 그룹도 20살 넘어 처음 생겼고, 앨범도 몇 개 있지만 케이팝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달까. 앨범을 종류별로 모으고, 원하는 포토 카드가 나오길 고대하고, 좋아하는 멤버의 직캠과 무대 영상을 찾아보는, 그런 건 게으른 내 성미와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어느새 케이팝이 이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사실 한국은 꽤 오랫동안 세계에 자신을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실일까? 한류라는 단어는 이젠 쓰기 민망할 정도로 오래됐다. 그러나 그 방향성에 있어 오랫동안 애먹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 가치 있는 문화를 아예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란 참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나 의상을 좋아했기 때문에, 더 이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이렇게 멋지고 좋은데, 남의 눈에 그렇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구나. 생각하면 할수록 한국적인 건 정말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어쩌면 한국 안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는 상황 자체가,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게 아닐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때 한국적인 것은 뭘까? 한류-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한국의 어떤 점이 그렇게 재밌었던 걸까? 그래, 어쩌면 한국이 가진 흥미로운 점을 먼저 찾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케이팝은 하나의 공식이 됐다. 탄탄히 짜인 콘셉트와 비주얼, 그리고 준비된 퍼포먼스. 좋아하는 마음을 증명하고 싶게 만드는 수많은 굿즈들까지. 멋진 걸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서나 똑같을 테니, 이런 파급력을 가지고 된 걸까? 케이팝이라는 생태계와 현재 상황까지 도달하게 된 상황을 말하자면 복잡하고 끝도 없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케이팝이 한국 문화의 가장 강렬한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 공식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국 문화가 얼마나 오래됐고, 고유하고 다채로운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 케이팝이 얼마나 멋진 장르인지 어필하지도 않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한국적 요소들은 훨씬 매력적이다. 낮은 산이 섞여 있는 도시의 모습, 오래된 성곽, 목욕탕에서 수건으로 만든 양머리. 거기에 일월오봉도, 호작도, 도포와 갓…그 무엇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팬들의 사랑을, 그리고 세상을 지키는 헌트릭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심각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전통문화부터 현대의 케이팝까지, 우리나라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게다가 문화와 나이를 막론하고 공감하기 쉬운 주제는 더더욱 영화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다름을 이해하고 고립을 넘어서, 다시 무대에 선 헌트릭스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진우의 선택에 슬퍼하지 않을 사람은?
다 보고 나니, 어찌저찌 관련 직종에 있을 때 걸려 왔던 기자의 전화가 생각났다. 그 전날 공개된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이 입은 한복에 관해 묻는 전화였다. 그게 어떤 한복이며, 진짜 한복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흥미롭게 묻는 기자의 전화에서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야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여전히 이상하고 기묘한 제목이지만, 내가 그 전화를 받은 날로부터 몇 년 후, 한국이 아닌 곳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걸 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